앞서 ‘세종이 심심하고 재미없냐고? 그렇다면 내려와서 한번 같이 뛰어보자. 진짜 오면 내가 국밥 한 끼 쏘겠다’며 다소 도발적인 도전장을 날렸던 본 기자([100투더세종-4]편 참고)였다. 하지만 기사가 나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이 먼 세종까지 낯선 기자와 뛰겠다고 찾아올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가뜩이나 초조한데 지인들은 물론 회사와 출입처에서 “어떻게 됐냐”, “진짜 온다는 사람이 있긴 하냐”고 묻는 통에 걱정이 극에 달했다. 급기야 아무도 나타나지 않을 상황에 대비해 절친 한 명을 ‘백업 선수’로 섭외해 두기까지 했다. 그렇게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찰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진짜 세종에 갑니다?!” 곳곳에서 연락이 하나둘 오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30~40대부터 세종 주민까지. 그렇게 지난 9일 오전 9시를 앞두고, 한글날 축제가 한창인 세종 중앙공원에 10여 명의 독자가 모였다. 정말로 세종까지 달려온 것이다.
전날 밤 미리 내려왔더니 ‘앗’…‘노잼’이라던 세종의 반전
대회가 오전 9시에 시작되는 만큼 참가자들은 전날 밤부터 하나둘 도착했다. 세종 방문이 처음이라는 30대 직장 여성 고모씨는 기차표를 예약하려다 깜짝 놀랐다. 아무리 검색해도 ‘세종역’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 세종 시내에 들어오려면 충북 청주시의 오송역에 내려 BRT(간선급행버스체계)로 갈아타야 한다. (이처럼 안타까운 세종의 교통 인프라는 조만간 [100투더세종]에서 다룰 예정) 결국 버스를 택한 고씨는 “초행길인데다 밤이라 길을 헤맬까 걱정했다”며 “세종이 엄청 먼 곳인 줄 알았는데 1시간 반 남짓 걸리더라. 서울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다녀올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서울의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양모(41)씨는 업무차 세종을 종종 찾았지만 마라톤과 축제를 즐기러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그동안 일만 하고 급히 올라가느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며 “이번에 여유있게 둘러보니 서울보다 역시 조용하고 한적하더라”고 전했다.
이번 마라톤을 위해 10㎞ 코스를 세 번이나 연습했다는 30대 서울 직장인 김모씨의 전날 밤 이야기는 흥미롭다. 하루 먼저 도착한 그는 세종의 ‘홍대’로 불리는 나성동의 혼술바를 찾았다. 김씨는 “세종은 놀 데도 없고 심심하다고 들었는데 새벽까지 영업하는 혼술바가 있더라”며 “20~30대 친구들과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교환하고 숨은 맛집까지 소개받았다. 생각보다 힙해서 놀랐다”고 전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마라톤 기록이었다. 전날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고도 이날 10.9㎞를 50여 분에 주파했다. 그 비결을 묻자 김씨는 “세종 찜질방 덕분”이라며 웃었다. 밤늦게 찾아간 찜질방 시설이 예상외로 좋아 피로를 말끔히 씻어냈다는 후문이다. 세종에 유황온천까지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알면 더 놀라지 않을까.
이응다리를 달린 가족들, 그리고 하늘에서 지켜본 ‘드론’까지
대망의 한글날 아침, 5.15㎞와 10.9㎞ 코스에 각각 도전하는 참가자들이 세종 중앙공원에 집결했다. 세종에 파견 근무 중인 직장인 하모(41)씨는 갓 돌이 지난 아들을 안고 있는 아내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출발했다. 하씨처럼 자녀와 함께 마라톤 현장을 찾은 젊은 부부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서울에서 여러 차례 마라톤을 완주한 양씨는 “어린아이들이 아장아장 뛰거나 아빠가 아이를 업고 달리는 모습에서 가족 친화적인 동네라는 인상을 받았다”며 “아이들이 뛰다가 주저앉아 다른 주자들이 불편할까 걱정했는데, 엄마들이 잽싸게 아이를 안고 옆으로 피하는 센스도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40대 직장인 김모씨는 자연환경을 꼽았다. 그는 “아스팔트에 먼지 날리는 도시를 벗어나 금강을 가로지르는 ‘이응다리’와 푸른 자연 속을 달리니 스트레스가 날아가더라”고 말했다.
특별한 장비를 챙겨온 독자도 있었다. 경기도에 거주하며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40대 문모씨는 고성능 드론으로 마라톤 풍경을 담아냈다. 본 기사에 실린 멋진 공중 촬영 사진은 모두 문 독자님의 헌신 덕분이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전한다.
정말 국밥을 먹긴 했는데… 나도 얻어먹고 생색은 ‘내가 냈다’
질주를 마친 뒤 시간 여유가 되는 참가자들과 국밥집을 찾았다. 약속했던 ‘국밥 한 끼’를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이날 행사로 시내 국밥집마다 손님으로 북적였다. 가는 곳마다 자리가 없어 몇 번이나 발길을 돌려야 했다. 급기야 “이럴 거면 차라리 쌀국수집에 가자”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호언장담했던 ‘국밥 약속’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부리나케 전화 몇 통을 돌려 세종 첫마을에서 국밥집을 찾아냈다. 이게 웬걸, 어렵사리 찾아간 곳이 ‘블루리본’에 등재된 맛집일 줄이야!
국밥 한 술에 파전 몇 젓가락이 오가던 때, 세종 초창기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직장인 허정걸(44)씨가 뼈 때리는 소감을 털어놨다. 허씨는 2013년 세종에 내려온 이른바 세종 원주민(?)이다. 이번 한글날 마라톤에도 3년 연속 참가했다. 그는 “처음 세종에 내려왔을 때는 정주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즐길 거리가 없으니 너무 갑갑했다. 직장이 아니었다면 여기서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심심하다 보니 오히려 취미를 여럿 갖게 됐다. 금강에서 카누도 타고, 펜싱과 스케이트, 테니스 등에 마라톤도 3년 내리 뛰고 있다”며 “돌이켜보면 서울보다 쾌적하게 취미를 즐기기에 이만한 여건이 없는 것 같다”고 웃었다.
마지막으로 이실직고할 일이 있다. 사실 이날 국밥값은 본 기자가 내지 않았다. 마라톤 취재를 나온 헤럴드경제 기자인 김선국 선배가 통 크게 한턱 쐈다. 결국 국밥을 사주겠다는 온갖 생색은 본 기자가 다 내고 정작 국밥은 실컷 얻어먹은 셈이 됐다. 이 역시 세종에 주재하는 든든한 선배의 훈훈한 인심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세종의 의리이자 정이던가!
그렇다면 이날 서울과 경기 등지에서 세종을 찾아온 독자들은 어떤 인상을 안고 돌아갔을까. ‘심심하고 재미없는 도시’라는 편견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함께 달리고 국밥을 나눠 먹으며 들은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
100투더세종…15편/투 비 컨티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