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구내식당이 달라지고 있다.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하는 공간을 넘어 유명 맛집 메뉴를 먹고 셰프를 직접 만나거나 이벤트까지 즐기는 공간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고물가가 이런 변화를 앞당겼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8월 외식물가는 전년 같은 달보다 2.7% 올랐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였다. 밖에서 점심 한 끼를 먹는 부담이 이어지면서 가격 경쟁력을 갖춘 구내식당을 찾는 직장인이 늘고, 급식업체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외식 못지않은 경험을 제공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점심을 뜻하는 런치(Lunch)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합친 ‘런치테인먼트’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맛과 품질은 기본이고 유명 셰프와 외식 브랜드, 방송 콘텐츠, 현장 이벤트를 더해 점심시간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드는 경쟁이다.
본푸드서비스의 단체급식 브랜드 본우리집밥은 최근 외식 브랜드와 셰프를 급식 현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힘을 싣고 있다.
지난 8월 서울 강남구 한 IT기업 구내식당에서는 김도윤 셰프가 운영하는 한식 면 전문점 ‘면서울’과 협업한 특식을 선보였다. 면서울은 2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선정된 곳이다.
대표 메뉴인 골동면과 수육을 단순히 비슷하게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매장에서 사용하는 소스와 조리 방식, 식사 방식까지 급식 환경에 맞춰 옮겼다. 김도윤 셰프가 직접 배식에 참여해 이용객들과 만나는 시간도 마련했다.
먹는 것 외에 놀거리도 넣고 있다. 7월에는 실제 수박을 들어보고 무게를 맞히는 ‘수박 무게 맞히기’, 8월에는 스톱워치를 3.65초에 멈추는 ‘3.65초 맞추기’를 전국 사업장에서 진행했다.
본우리집밥은 10월에도 계절을 활용한 ‘수확의 계절 이벤트’, 12월에는 한 해 인기 메뉴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이어갈 계획이다.
삼성웰스토리는 식품 브랜드를 급식 메뉴와 결합했다.
지난 7월 팔도와 손잡고 전국 170여개 구내식당에서 ‘전국 팔도 비빔시장’을 진행했다. 팔도 비빔장을 기본으로 서울식 삼겹파채 비빔면, 부산식 어묵튀김 비빔우동, 대구식 납작만두 비빔쫄면, 속초식 한치 비빔물회 등 지역별 메뉴를 만들었다.
메뉴만 바꾼 것도 아니다. 현장에서는 미니게임과 쿠폰 이벤트를 운영했고 일부 사업장에서는 이용객이 직접 메뉴를 제안하는 ‘나만의 팔도비빔면 레시피 콘테스트’를 열었다. 선정 메뉴는 실제 삼성웰스토리 구내식당 메뉴로 내놓는 방식이다.
삼성웰스토리는 최근 구내식당을 단순 식사 공간보다 넓게 활용하고 있다. 개인 영양·건강 데이터를 바탕으로 식단과 코칭을 제공하는 ‘웰스토리플러스’와 헬스케어 특화 공간 ‘데이클 라운지’를 운영하는 등 식사 경험을 건강관리 영역까지 넓히고 있다.
볼거리 경쟁도 붙었다.
사조푸디스트는 올해 주요 위탁급식 사업장에서 유명 셰프 협업 특식과 식품사 팝업키친, 참치 해체쇼 등 체험형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특히 참치를 현장에서 직접 손질하는 해체쇼는 완성된 음식을 배식하는 기존 급식과 달리 조리 과정 자체를 볼거리로 만들었다.
반응은 이용객 숫자로 나타났다. 사조푸디스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셰프 협업과 팝업 행사 등을 진행한 날의 평균 식수는 평소보다 15.2% 늘었다. 부산의 한 병원에서 진행한 김도윤 셰프 특식 행사에서는 식수가 31.8% 증가했다.
7월에는 오뚜기와 함께 전국 약 30개 급식 사업장에서 ‘팝업키친’을 열었다. 글루텐프리 카레를 활용한 돈가스 카레덮밥, 저칼로리 참치마요 귀리덮밥, 저당 토마토소스 만두그라탕 등 건강 지향 제품을 급식 메뉴로 바꿨다.
CJ프레시웨이는 구내식당에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을 접목하고 있다.
올해 1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IP를 활용한 수라상 콘셉트 메뉴를 10개 사업장에서 선보인 결과 식수 인원이 전주보다 10.7% 증가했다.
6월에는 tvN 예능 프로그램 ‘언더커버 셰프’에 등장한 이탈리아 나폴리 현지 식당 메뉴를 급식으로 구현했고, 해당 사업장 식수도 전주보다 8.8% 늘었다.
셰프 협업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윤남노 셰프의 ‘우마카세 된장갈비’를 구내식당에서 선보였고, 오스틴강·황진선·조셉 리저우드 등과 함께 ‘셰프 마스터즈’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선정된 ‘진중 우육면관’의 우육탕면도 급식 메뉴로 내놨다.
CJ프레시웨이는 이런 경험을 급식 밖으로도 넓히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푸드코트에서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에 등장한 셰프 메뉴를 판매했는데, 출시 첫 주 인천공항 상주직원 대상 매출이 44.8% 증가했다.
현대그린푸드는 아예 외식 브랜드 협업을 연간 프로젝트로 키웠다.
올해 ‘H-로드트립’을 시작하고 전국 단체급식 사업장에서 외식 브랜드와 셰프 협업 메뉴 약 100종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유가네닭갈비와 프랭크버거, 채선당, 마왕족발 등 기존 프랜차이즈뿐 아니라 속초 만석닭강정과 바비큐 브랜드 로코스, 이탈리안 요리 김호윤 셰프, 김병현 전 메이저리거가 운영하는 독일식 소시지 전문점 ‘메쯔거49’ 등으로 협업 범위를 넓혔다. 지난해 말에는 깐부치킨 메뉴도 단체급식으로 선보였다.
음식을 제공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고객사 임직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외식 브랜드 밀키트를 활용한 원데이 쿠킹클래스도 추진하고 있다. 구내식당 메뉴 경쟁을 사내 복지 콘텐츠로까지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급식업체들이 이처럼 콘텐츠에 힘을 주는 이유는 분명하다. 구내식당의 가격 경쟁력만으로 이용객을 붙잡는 시대가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장소에서 점심을 먹는 직장인에게 얼마나 새로운 메뉴와 경험을 제공하느냐가 고객사 재계약과 신규 수주 경쟁에서도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 셰프 특식이나 콘텐츠 협업을 진행한 사업장에서 식수 증가가 확인되면서 이런 흐름은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외식 브랜드 입장에서도 직장인 수백~수천명이 한꺼번에 모이는 구내식당은 새로운 제품과 메뉴를 알릴 수 있는 체험 공간이 된다.
한 끼를 싸고 빠르게 먹는 곳이었던 구내식당이 맛집과 셰프, 식품 브랜드와 콘텐츠가 경쟁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급식업계의 승부처는 ‘오늘 메뉴가 무엇인가’에서 ‘오늘 점심시간에 무엇을 경험할 수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