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처럼 두 팔과 두 다리를 움직이며 물건을 고르고 포장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물류센터로 들어오고 있다.
단순히 정해진 경로를 오가는 운반 로봇을 넘어 상품을 눈으로 구분하고 집어 옮긴 뒤 다음 작업까지 이어서 수행하는 단계다. 국내에서는 CJ대한통운이 실제 물류 운영 공정에 휴머노이드를 투입한 데 이어 롯데하이마트도 2028년부터 가전 물류센터에서 실증에 나선다. 해외에서는 이미 수만~수십만 건의 작업 데이터를 쌓은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하이마트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이 주관하는 2026년도 로봇산업기술개발사업 국책 과제에 최종 선정됐다. 사업은 올해부터 2031년까지 진행된다. 유진로봇이 과제를 주관하고 씨소와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이 연구기관으로 참여한다. 롯데하이마트와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실제 물류 현장을 제공하는 수요기업으로 참여한다.
롯데하이마트는 2028년부터 이천물류센터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할 예정이다. 주문을 확인한 뒤 상품 모델과 옵션을 구분하고 바코드를 읽어 필요한 제품을 집는 피킹부터 포장하는 패킹까지 여러 작업을 연속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 검증한다. 내년까지는 모사 환경에서 대상 공정을 분석해 실증 시나리오와 평가 기준을 마련한다.
가전 물류는 난도가 높은 편이다. 같은 제품도 용량과 색상, 세부 모델에 따라 외형이 비슷하고 포장 박스 크기도 제각각이다. 롯데하이마트는 로봇이 작업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성공·실패 데이터를 축적해 오피킹과 오배송을 줄이고, 돌발 상황에도 대응하며 여러 공정을 스스로 이어가는 ‘완전자율 연속 공정’ 가능성을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롯데하이마트보다 한발 먼저 실제 운영 현장에 휴머노이드를 투입한 곳도 있다.
CJ대한통운은 지난 9월 경기도 용인 양지 올리브영 물류센터에 휴머노이드 양팔 로봇 2대를 배치했다. 로봇은 실제 고객 상품을 처리하는 포장 라인에서 박스 안에 완충재를 넣는 작업을 맡는다. 지난해 군포 풀필먼트센터에서 현장 적용 가능성을 검증한 뒤 실증 단계를 넘어 실제 운영 공정으로 범위를 넓힌 것이다.
CJ대한통운은 앞으로 휴머노이드 적용 범위를 피킹과 분류, 검수, 포장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앞서 로보티즈와 현장 실증을 진행했고 레인보우로보틱스와도 물류 특화 휴머노이드 공동 개발에 나섰다. 로봇의 두뇌에 해당하는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위해 피지컬 AI 기업 리얼월드와도 협력하고 있다.
기존 물류 자동화 설비와 휴머노이드의 가장 큰 차이는 작업 환경을 크게 뜯어고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컨베이어나 고정형 로봇팔은 특정 공정에 맞춰 설비를 구성해야 하지만, 사람 체형과 비슷한 휴머노이드는 사람이 쓰던 작업대와 통로, 도구를 그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반대로 넘어지지 않고 움직이는 능력, 배터리 지속시간, 물체를 안정적으로 집는 정밀도와 작업 속도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남아 있다.
해외에서는 휴머노이드를 실제 사업에 투입해 작업량을 쌓는 단계까지 진입했다.
미국 물류기업 GXO는 로봇기업 어질리티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디짓(Digit)’을 조지아주 물류센터에서 상업 운영하고 있다. 2023년 시험 운영을 거쳐 2024년 다년 계약을 체결했고, 디짓은 물류센터에서 자율이동로봇이 가져온 상품 컨테이너를 내려 컨베이어에 옮기는 작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GXO와 어질리티는 이를 휴머노이드의 첫 정식 상업 배치 사례로 설명한다.
실제 작업량도 공개됐다. 어질리티로보틱스에 따르면 GXO 현장에서 디짓이 옮긴 컨테이너는 누적 10만개를 넘어섰다. 회사는 작업 수행 중 정확도가 약 98%에 달했다고 밝혔다. 휴머노이드가 짧은 시연을 넘어 반복 작업의 안정성과 투자 효율성을 검증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제조 현장에서도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BMW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스파턴버그 공장에서 로봇기업 Figure의 휴머노이드 ‘Figure 02’를 생산라인에 투입했다. BMW에 따르면 로봇은 약 10개월 동안 평일 하루 10시간씩 작업하며 9만개가 넘는 부품을 옮겼고, BMW X3 3만대 이상 생산 과정에 참여했다. 누적 가동시간은 약 1250시간이다. BMW는 이후 차세대 Figure 03을 물류 시퀀싱 작업에 투입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기업들이 휴머노이드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 인건비 절감에만 있지 않다.
현재 물류센터에는 상품을 옮기는 자율이동로봇이나 자동분류기, 로봇팔이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다. 다만 대부분 특정 위치와 특정 작업을 전제로 설계된다. 상품 위치와 크기가 계속 달라지고 작업 순서까지 바뀌는 상황에서는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휴머노이드는 카메라 등 센서를 통해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AI가 다음 행동을 판단해 여러 작업을 이어서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때문에 생성형 AI가 디지털 공간에서 문서와 이미지를 다뤘다면 로봇을 결합한 ‘피지컬 AI’는 실제 산업 현장의 물건과 설비를 움직이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해외 사례 역시 현재는 제한된 공정에 집중돼 있다. GXO의 디짓이나 BMW의 Figure처럼 실제 운영 실적을 확보한 사례가 나오고 있지만 사람 작업자를 완전히 대체해 물류센터 전체 공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않았다.
롯데하이마트가 2028년부터 확인하려는 것도 이 지점이다. 상품 인식과 피킹, 바코드 확인, 패킹을 따로 자동화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로봇이 작업을 연속해서 수행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까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물류센터의 휴머노이드 경쟁은 이제 ‘걷고 물건을 들 수 있느냐’에서 ‘얼마나 오래, 정확하게 실제 일을 할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