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에 이민 간 스테파니 안(사진) 감독은 두 문화권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체감했다. “이민 가정인 우리 집에서 사랑의 가장 중요한 표현은 ‘자기희생’이었어요. 반면 서구 가정에서는 먼저 자신을 사랑한 다음 타인을 사랑하라고 하죠. 두 방식이 모순되는 것이 늘 이상하게 느껴졌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영화 ‘베드포드 파크’는 이런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영화 편집자로 오랜 경력을 쌓은 안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올해 선댄스 영화제 미국 드라마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인 데뷔장편상을 받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모국 관객에게 영화를 선보인 안 감독을 지난 8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약 25년 만에 한국에 오래 머물게 됐다”며 “아주 복잡한 감정이 든다”고 했다. 부모도 함께 방한해 영화를 처음 봤다. 그는 “한국 사람이라는 것, 마침내 고향에 왔다는 것을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느끼고 있다”며 “부모님과 함께 영화를 본 일도 여러모로 특별했다”고 말했다.
주인공 오드리(최희서)는 미국 뉴저지에서 일하는 한국계 미국인 물리치료사로, 어머니의 교통사고를 수습하다 일라이(손석구)를 만난다. 이민 가정에서 자란 오드리와 입양가정 출신인 일라이는 각자의 가족사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의 아픔을 알아가며 관계를 맺는 과정을 따라간다. 최희서와 손석구는 섬세한 톤으로 조율된 영어 대사로 극을 이끌고, 오드리의 부모 역은 원미경과 김응수가 맡아 극에 무게를 싣는다.
안 감독은 작품의 배경을 ‘인지 부조화’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한국인이면서 미국인이기도 하지만, 어느 한쪽에 온전히 속한다고 느끼지 못하는 정체성의 혼란이다. 그는 “이런 상반된 정체성 때문에 스트레스와 불안을 겪는 사람이 많다”며 “영화에서 다룬 문제가 문화적 배경을 넘어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영화는 선댄스 공개 이후 평단에서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 등 한국계 미국인 이민자를 다룬 작품들과 함께 언급됐다. ‘패스트 라이브즈’가 한국어 ‘인연’의 개념을 미국 영화에 녹여냈다면, ‘베드포드 파크’에서는 ‘한(恨·han)’이라는 단어가 등장인물의 대사로 여러 차례 나온다. 안 감독은 “‘한’은 개인이나 국가가 과거에 겪은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방식까지 아우르는 복잡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내가 이해한 만큼 솔직하게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는 “‘밀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100% 리얼하다”며 “관객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쌓아가다 어느 순간 긴장을 폭발시키는 연출 방식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