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로 노트북을 판 A씨는 대금 300만원을 받은 지 사흘 만에 은행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사기 이용 계좌’로 신고돼 지급정지 됐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후에는 채권 소멸절차가 개시됐다는 통지도 왔다. 노트북 구매자가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피해자에게서 가로챈 돈으로 물건값을 치른 결과다. A씨는 범죄와 아무 관련이 없지만, 그대로 두면 계좌에 있는 돈을 잃을 수 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하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피해자가 신고하면 은행이 명의인의 사정을 따지지 않고 먼저 계좌 지급정지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피해금이 빠져나가기 전 묶어두려는 취지다. 이어 금융감독원이 채권 소멸절차 개시를 공고하고, 공고일부터 2개월이 지나면 명의인의 예금채권 중 해당 금액은 소멸해 피해자에게 환급된다. 명의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당하게 받은 돈이라도 그대로 잃게 되는 구조다. 그 사이 전자 금융거래까지 제한돼 일상생활에도 큰 불편을 겪는다.
명의인이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은행에 이의 제기를 하는 것이다. 법은 계좌에 들어온 돈이 물건이나 용역을 제공한 대가처럼 정당한 권원으로 받았다는 점을 객관적 자료로 소명하면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억울하다’는 주장만으로 받아들여지는 사례는 드물다. 거래 경위를 보여주는 대화 내역, 물품 인도 자료, 평소 계좌 사용 내역 등을 법이 정한 요건에 맞게 정리해 제출하지 못하면 반려되는 일이 적지 않다.
이의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피해자를 상대로 채무 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방법이 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지급정지 후 소송 제기를 원칙적으로 막으면서도 명의인과 피해자 사이의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은 예외로 허용하고(제4조의2 제2항), 이 소송이 법원에 계속 중인 경우를 지급정지·채권 소멸절차의 종료 사유로 정하고 있다(제8조 제1항 제1호의2, 제5조 제1항 제5호). 소를 제기하면 채권 소멸절차가 멈추고, 피해금 부분은 판결로 결론을 얻게 된다. 실제로 상당수 은행은 지급정지 해제의 조건으로 피해자를 상대로 한 소송의 소장이나 승소 판결문을 요구한다.
그런데 최근 몇몇 법원은 이런 소송을 ‘확인의 이익이 없다’며 각하하고 있다. 이의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지급정지를 한 은행을 상대로 소를 제기할 수 있으므로, 피해자를 상대로 채무 부존재 확인을 구하지 않아도 지급정지를 끝낼 다른 방법이 있다는 이유다. 그러나 법이 피해자를 상대로 한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지급정지와 채권 소멸절차를 끝내는 수단으로 명시해 두었는데도 확인의 이익을 부정하는 것은 법문에 반하는 해석이어서 조심스럽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은행이 피해자를 상대로 한 채무 부존재 확인의 소 결과를 요구하는 실무와도 맞지 않는다.
현재는 비슷한 유형의 사건에서도 각하 판결과 본안 판결이 혼재되어 선고되고 있고, 은행마다 요구하는 서류와 처리 방식도 조금씩 다른 상황이다. 누구를 상대로 어떤 소를 제기할지, 이의 제기와 소송을 어떻게 병행할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의 제기 단계부터 소명자료를 법 요건에 맞게 준비하고, 소송이 필요하면 사건에 맞는 상대방과 청구를 정해야 한다. A씨는 채권소멸까지 남은 시간은 두 달에 불과하다. 통지를 받았다면 혼자 대응하기보다 곧바로 이 분야 경험이 있는 변호사와 상의하기를 권한다.
이다솔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dasol.lee@barunlaw.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