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초 미국 연방의회 중간선거에서 하원은 물론 상원도 공화당이 패배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며 보수 성향 법조인들 사이에 ‘비상’이 걸렸다. 상원은 연방대법원 대법관 등 모든 연방법원 판사에 대한 임명 동의권을 갖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으로 부상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법관 인사권은 제약이 불가피하다. ‘보수 6 대 진보 3’이란 현 대법원의 보수 절대 우위 구조가 깨질 수 있다는 뜻이다.
11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를 통해 이날이 사법사상 유명한 ‘아니타 힐 청문회’ 35주년에 해당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는 1991년 10월11일 당시 대법관 후보이던 클래런스 토머스(78)를 상대로 한 상원 법사위의 인사청문회에 “과거 토머스 밑에서 일할 때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법학자 아니타 힐(70)이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한 사건을 뜻한다. 토머스는 공화당 조지 H W 부시(일명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강성 보수 성향의 법조인이었다.
일각에선 토머스의 낙마가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그런데 토머스가 미국 역사상 두 번째 흑인 대법관 후보란 점, 일부 상원의원이 힐의 증언 신빙성을 의심하고 나선 점 등이 결국 판세를 뒤집었다. 상원은 본회의를 열고 찬성 52표 대 반대 48표의 근소한 차이로 토머스 인준안을 가결했다. 그는 1991년 10월23일 정식으로 대법관에 취임했다.
WP가 이런 과거사를 들춰낸 속내가 무엇인지 알 순 없으나, 토머스가 대법관으로 재직한 기간이 벌써 35년에 이른다는 점을 새삼 일깨운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 역대 대법관들 중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킨 인물은 무려 36년7개월 동안 대법관을 지낸 윌리엄 더글러스(1980년 사망)다. 현재 대법원장 등 대법관 9인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토머스가 오는 2028년 5월까지 은퇴하거나 사망하지 않는다면 더글러스를 제치고 ‘최장수 대법관’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사실 이는 공화당이나 보수 성향 법조인들에게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중간선거 결과 상원도 민주당이 이겨 다수당에 오를 것’이란 예측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만약 이게 현실로 나타난 뒤 고령의 대법관이 은퇴하거나 사망함으로써 대법원에 결원이 생긴다면 보수 진영에는 치명적이다. 민주당 반대로 트럼프와 공화당이 원하는 보수 법조인을 후임 대법관에 임명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보수 진영에선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으로 있는 동안 고령의 보수 대법관들이 용퇴하고 젊은 보수 법조인들을 대법원에 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78세의 토머스와 그에 이어 두 번쨰로 나이가 많은 새뮤얼 얼리토(76) 대법관을 겨냥한 일종의 ‘압박’인 셈이다.
일각에선 11월 중간선거 결과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 자리를 민주당에 빼앗기면 토머스와 얼리토 중 적어도 한 명은 즉각 은퇴를 선언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편다. 2027년 1월 민주당 주도의 새 상원이 출범하기 전 트럼프에게 젊은 보수 법률가를 대법관으로 임명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최장수 대법관이 되고 싶어하는 토머스보다는 얼리토가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다만 대법관직을 더 수행하고자 하는 얼리토의 의지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은 변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