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임성기 회장 사후 경영권 분쟁으로 흔들리던 한미약품그룹이 전열 재정비에 나섰다. 임 창업주의 부인이자 현 회장인 송영숙 회장 중심으로 회사 체제가 자리 잡으며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안정을 되찾은 한미약품은 한국판 위고비라 불리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에페’를 내세워 반전을 노린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가 양분하는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에 뛰어들어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겠단 전략이다.
12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송 회장은 최근 창립기념일을 맞아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임 회장이 떠난 후 막대한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러분께 면목 없는 모습을 보여드린 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라며 “조속히 이 혼란함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한미약품그룹은 임 회장이 2020년 별세한 이후 상속세 납부 방안을 둘러싸고 가족 간 분쟁을 겪은 바 있다.
송 회장은 “최근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한미 가족 여러분이 만들어 낸 혁신의 성과는 실로 놀라웠다”며 비만 신약 ‘에페’의 허가와 실적 개선을 통해 한미의 저력을 확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또 각사 전문경영인들이 여러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겠다”고 덧붙였다.
송 회장은 ‘미래의 한미’에 집중해야 한다며 “과거에 함몰돼 회사의 미래를 막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솔선수범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다시 한번 과감히 도전해 달라”며 사내 결속과 혁신을 당부했다.
◆한미약품 비기는 ‘에페’…위고비 마운자로 거기서라
한미약품의 숨겨진 무기는 바로 비만치료제 에페다.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는 식욕을 억제하고 음식물의 위 배출을 지연시켜 체중 감량을 유도하는 약이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가 대표적이다.
에페의 강점은 2가지다. 한국인 중심 데이터가 많다는 점 그리고 가격이다. 한미약품은 에페 개발을 위해 자체 신약 개발 플랫폼 기술 ‘랩스커버리’를 활용했다. 이를 통해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개발, 허가, 제조, 상업화까지 전 과정을 스스로 수행했다. 회사는 국내 임상을 통해 한국인 환자를 대상으로 에페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했다. 지난해 10월 공개된 임상 3상 40주 중간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 비만 환자 448명에게 에페를 투여한 결과 평균 체중감소율은 9.75%로 나타났다. 개별 환자에서는 최대 30%의 체중 감소가 확인됐다. 체중이 5% 이상 감소한 환자는 투여군의 79.42%였으며 10% 이상 감소한 비율은 49.46%, 15% 이상 감소한 비율은 19.86%로 집계됐다. 구역과 구토, 설사 등 GLP-1 계열 치료제에서 흔히 나타나는 위장관계 이상사례에서도 양호한 내약성을 확인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가격 경쟁력도 갖췄다. 제약업계에서 전망하는 에페의 예상가격은 10만원대다. 저용량 제품 가격은 20만원이 넘고, 고용량 제품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위고비 마운자로와 비교하면 가격 경쟁력이 월등히 높다. 저렴한 비만약에 대한 수요는 매우 높다. 마운자로의 비싼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일본에 건너가 약을 구매하는 ‘스시자로’ 현상까지 나타나는 형국이다. 일본으로 약품 쇼핑을 가는 인구가 많아지자 당국이 특별단속까지 나서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저렴하면서도 성능은 비슷한 제품이 나온다면 충분히 통할 것이란 게 제약업계의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