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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장판파의 장비처럼 ‘단두매 매치’에서 LG 마운드를 홀로 지탱한 고우석, 그의 미국 도전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남정훈의 비욘드 더 그라운드]

[남정훈 기자] 마치 장판파에 홀로 서서 조조의 백만 대군을 상대하는 장비를 보는 듯했다. 혼자서 3.2이닝을 버텨냈다. LG가 어쩌면 준플레이오프에 직행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희망을 품게 해 준건 오롯이 고우석의 역투 덕분이었다. 그 투혼이 김도영의 8회 결승 투런포 한 방에 빛이 바랬지만.

 

12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LG 고우석이 7회말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LG 고우석이 7회말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우석은 12일 전남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6 KBO리그 KIA와의 원정 경기에서 4회 1사에 등판해 7회까지 3.2이닝을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틀어막아냈다.

 

이날 경기 전까지 KIA가 78승2무63패로 3위, LG가 78승1무64패로 반 경기 차 뒤진 4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날 경기는 승자가 최종 3위를 차지해 준PO 직행 티켓을 거머쥐는, 그야말로 외나무다리, 단두대 매치였다.

 

절체절명의 승부지만, LG에겐 불리한 요소가 있었다. 마무리 손주영이 목에 담 증세를 보여 아예 서울로 이동한 상태였다. 9회를 책임질 마무리가 사라진 건 분명 큰 악재였다. 그랬기에 LG로선 고우석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욱 중요해졌다.

 

KIA 박재현과 LG 박동원이 솔로포로 장군 멍군을 하면서 1-1로 맞선 4회말. KIA의 선두타자 김도영이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했고, 카스트로의 중전 안타 때 김도영이 과감한 주루로 3루까지 파고들며 무사 1,3루 기회를 잡았다. LG 선발 임찬규는 나성범을 유격수 팝플라이로 처리하며 한숨 돌렸지만, 김선빈이 재치 넘치는 세이프티 스퀴즈 번트로 김도영을 홈으로 불러들이며 KIA가 2-1 리드를 잡았다.

 

12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LG 고우석이 6회말에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LG 고우석이 6회말에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진 1사 1,2루 위기. LG의 염경엽 감독이 승부수를 던졌다. 고우석의 전격 등판이었다. 그 상황에서 실점을 더 하면 이날 경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LG 불펜에서 가장 강한 공을 던지는 고우석을 마운드에 올린 것이다.

 

고우석은 염 감독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했다. 하주석을 시속 153km 포심으로 헛스윙 삼진으로 솎아냈고, 김태군도 155km짜리 몸쪽 높은 코스의 포심을 찔러 배트를 유도해 삼진으로 잡아내며 불을 껐다.

 

고우석은 계속 마운드를 지켰다. 5회 1사 후 박정우에게 2루타를 맞아 위기에 몰렸지만, 박재현을 2루 땅볼로, 김도영에게 중전 적시타성 타구를 맞았지만 박해민의 다이빙 캐치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쳤다.

 

6회를 중견수 뜬 공 3개로 끝낸 고우석은 2-2로 맞선 7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선두타자로 나선 대타 이호연에게 우측담장 직격 2루타를 맞고 위기에 몰렸다. KIA 벤치의 선택은 당연히 희생번트. 김태군이 번트를 잘 댔고 1사 3루 찬스를 잡았다. 외야 뜬 공 하나면 한 점을 낼 수 있었다.

 

12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LG 고우석이 6회말에 투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LG 고우석이 6회말에 투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플레이 타구가 나오면 어떤 변수가 나올지 모른다. 투수가 아웃카운트를 가장 안전하게 잡는 방법은 스스로 잡아내는 삼진이다. 고우석은 이미 투구수 30구를 넘겼으나 구위는 멀쩡했다. 김호령을 153km 포심으로 헛스윙 삼진으로 솎아냈고, 박정우도 154km 포심 앞에 공에 스칠 수조차 없었다. 그만큼 위기에 몰린 고우석의 포심은 ‘언터쳐블’이었다.

 

고우석의 투구수가 43구에 다다르자 염경엽 감독은 8회 마운드를 아시아쿼터 좌완 불펜 존 케네디로 교체했다. 그러나 케네디는 박재현에게 기습 번트 안타를 허용한 뒤 김도영에게 통한의 결승 투런포를 얻어맞고 말았다. 이 한 방에 이날 경기는 끝이 났다.

 

비록 패했지만, 고우석의 투혼과 역투는 빛났다. 이날 경기는 고우석의 올 시즌 마지막 등판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도전을 이어가느라 지난달 2일에야 LG 마운드 합류한 고우석은 포스트시즌 출전 자격이 없다. 국내 선수는 7월31일 이전에 등록해야만 포스트시즌 출전이 가능하다. 3.2이닝 2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 이 기록이 올 시즌 고우석의 마지막 등판 성적표다.

 

LG 불펜이 허약해진 상황에 팀에 합류한 고우석은 그야말로 ‘단비’였다. 이날 경기 포함 고우석은 16경기 등판해 23이닝을 던졌다. 평균자책점은 1.57에 불과했고, 이닝당 1개가 넘는 28개의 삼진을 솎아냈다. 볼넷은 단 6개에 불과할 정도로 안정된 제구도 자랑했다. 피안타율 0.195 WHIP 0.95 등 세부지표도 훌륭했다.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6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LG 고우석이 8회초 등판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뉴스1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6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LG 고우석이 8회초 등판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뉴스1

2024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미국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렸던 고우석은 올해 7월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으로 빅리그 마운드를 밟으며 꿈을 이뤘다. 4경기에 등판해 4이닝을 던져 8피안타 2볼넷 5탈삼진 4실점(4자책) 평균자책점 9.00을 기록한 뒤 방출대기 통보를 받았다. 신분이 마이너리그로 이관되자 결국 고우석은 ‘아메리칸 드림’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혹자는 고우석의 미국 도전기가 실패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KBO리그로 돌아온 고우석은 분명 성장해 있었다. 미국 도전 이전에도 포심은 150km 중반대를 넘나들었지만, 공의 무브먼트는 그다지 없었던 고우석은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포심의 무브먼트를 늘렸고, 커터도 장착했다. 130km 중반대의 커브는 더욱 예리해졌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시작할 LG의 포스트시즌을 고우석은 이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풀타임을 치를 내년 시즌 고우석은 어떤 모습일까. 다시 한번 LG의 9회를 책임져주는 투수로 돌아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