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공존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뚝심일까. 때로 같은 편들조차 의심하는데도 의지를 꺾지 않으니 이렇게 평가할 만도 하다 싶다. 이상만 쫓는 비현실적 주장같기도 하다. 철천지 원수 취급하는 함께 잘살아 보자한 들 될 일인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북 인식을 좇아가다 보면 드는 생각이다.
평가가 크게 엇갈리니 논란이 거세다. 남북관계가 장기간 단절된 상황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줄이고 대화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 반면 북한이 적대정책을 고수하고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유화 조치가 태도 변화를 이끌 수 있겠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지금껏 남북관계를 규정해 온 기본적 개념, 접근 방식을 뒤집는 것이나 다름없어 거센 논란을 일으킨 사례 몇 가지를 짚어본다.
◆‘북한은 주적이 아니다’
정 장관의 대북 인식은 지난해 7월 취임 전부터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이 대한민국의 주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 그랬다. 북한 자체를 적으로 규정하는 것과 북한의 군사적 능력·행동을 안보 위협으로 판단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지난 8월에는 ‘주적’이라는 용어를 대결과 혐오의 언어로 규정하고 다른 표현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을 공식 국호인 ‘조선’으로 부르는 것도 제안했다.
정 장관의 주장은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언어를 바꾸는 것이 상호 존중과 신뢰 구축의 시작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남북한 간 적대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대결적 표현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북한이 남한을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적대적 표현을 거두는 것이 적절하냐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국방부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적으로 규정하는 기존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여 정부 내 이견이 드러났다.
◆‘남북은 국가 대 국가’
남북관계의 성격을 둘러싼 정 장관의 ‘평화적 두 국가론’도 논쟁의 대상이다. 평화적 두 국가론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한 대응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평화적인 두 국가를 제도화하는 것이 바로 통일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발간된 ‘2026 통일백서’에도 남북이 사실상 두 국가로 존재하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정 장관의 구상은 남북한이 평화공존하며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관계를 제도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통일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북한이 민족과 통일의 개념을 부정하며 남북관계를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전환한 상황에서 우리 역시 남북한을 두 국가로 인식하는 것이 북한의 논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다. 헌법의 영토 조항과 평화통일 원칙, 남북기본합의서가 규정한 잠정적 특수관계와의 정합성 문제도 논란이 됐다.
◆‘DMZ 지뢰 공격으로 단정 못해’
지난달 21일 발생한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한 정 장관의 인식은 격렬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군과 유엔사는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에 의한 폭발로 판단했다. 그러나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 명의의 담화에서 남한의 ‘자작 광대극’으로 규정하며 책임을 부인했다.
정 장관은 북한군의 지뢰 매설 사실과 우리 군을 겨냥한 의도적 공격 여부는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12일 열린 언론간담회에서도 같은 입장을 반복하며 “근원적인 문제는 유엔군사령부와 우리 군, 북한군이 각각 인식하는 군사분계선(MDL)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국경선 요새화가 정전협정 체제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이번 사건을 대화와 평화공존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계기로 해석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독자 제재에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논란은 북한이 정 장관의 발언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하면서 더욱 커졌다. 북한 대표는 지난 8일 유엔총회에서 “한국 정부 당국자“(정 장관)조차 지뢰 폭발을 북한의 고의적 공격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북한의 지뢰 매설을 정전협정 위반으로 규정하고 책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정 장관의 발언이 북한의 반박 논리로 활용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