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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뜬 대낮의 기차역에서 호크니의 숲까지…현대회화 100년 궤적 [권이선의 남겨진 것들]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현대회화 하이라이트: 시대의 초상’전
델보·샤갈·드 쿠닝·콘도 등 거장 14명의 작품 20점 한자리
꿈과 무의식에서 추상·포스트모더니즘까지 회화의 변화 조망

화물열차가 들어선 기차역,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철로 옆에 등을 돌린 채 서 있다. 둥근 달이 떠 있지만 하늘 빛은 낮인지 밤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폴 델보(1897∼1994)의 ‘크리스마스의 밤’(1956)이다. 제목과 달리 성탄절의 들뜬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고, 시간이 멈춘 듯한 적막이 화면을 감싼다. 기차와 철로, 건물과 여인 등 익숙한 것들이 모여 낯선 풍경을 이룬다.

 

폴 델보 ‘크리스마스의 밤’(1956).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폴 델보 ‘크리스마스의 밤’(1956).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서울 강남구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회화 하이라이트: 시대의 초상’은 이처럼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서부터 시작해 추상,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의 현대회화 100여년의 흐름을 폭넓게 조망한다. 델보와 마르크 샤갈, 윌렘 드 쿠닝, 조지 콘도, 아드리안 게니 등 세계적인 작가 14명의 작품 20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특히 올해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호크니와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국내외 컬렉터들이 소장해 온 것들로, 대부분 100호가 넘는 대작이다. 도판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작품 크기부터 붓이 지나간 자취와 물감의 두께까지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회화의 표현 방식뿐 아니라 화가들이 살았던 시대와 사회, 개인의 경험이 어떻게 화폭에 담겼는지도 들여다본다. 19세기 사진의 등장으로 눈앞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일은 더 이상 화가들만의 몫이 아니었다. 화가들은 꿈과 무의식으로 눈을 돌리고, 사물의 형상을 해체하거나 지우는가 하면, 인물과 풍경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려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 또 어떻게 그릴 것인가. 전시는 그 질문에 대한 화가들의 다양한 답을 따라간다.

 

델보와 함께 전시장의 첫 번째 공간 ‘꿈의 산책’에 걸린 마르크 샤갈(1887∼1985)의 ‘방스 주변’(1955∼1957)은 기억과 환상이 뒤섞인 풍경이다. 델보가 정교한 묘사로 꿈속 같은 적막을 만들어냈다면, 샤갈은 중력과 시간을 거스르며 현실의 질서를 허물었다. 초현실주의 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던 샤갈은 고향의 기억과 유대교 신앙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환상적인 풍경을 그려냈다. 프랑스 남부 방스의 지붕들 위로 아기를 안은 여인과 괘종시계, 날개 달린 형상들이 떠다닌다. 푸른빛이 감도는 화폭 위쪽에는 천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아래에는 붉은 장미와 과일, 촛대가 놓인 식탁이 자리한다. 하늘과 땅,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한 화폭에 포개진 모습이다.

 

그림 속 물고기는 청어 장수였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연결된다. 러시아 비테브스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샤갈에게 고향의 집과 가족, 동물들은 평생 그림에 되풀이해 등장하는 소재였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에 머물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1950년부터 방스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유화 물감에 톱밥을 섞은 화면에서는 거친 질감도 느껴진다.

 

조지 콘도 ‘경영진들과 그들의 아내들’(2011).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조지 콘도 ‘경영진들과 그들의 아내들’(2011).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꿈과 기억을 담아내던 화가들의 시선은 전시장의 두 번째 공간 ‘난해한 추상’에서 선과 색채로 향한다. 사물의 형상은 자취를 감추고, 붓질의 움직임과 색채의 대비가 캔버스를 채운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 윌렘 드 쿠닝(1904∼1997)의 ‘무제 XIX’(1984)가 대표적이다. 높이 2m가 넘는 흰 캔버스 위로 붉고 푸른 붓질이 굽이치며 지나간다. 힘차게 뻗어나가던 선은 부드럽게 휘어지고, 다른 선과 겹치다가 끊어진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926년 미국으로 건너간 드 쿠닝은 여성의 얼굴과 신체를 거칠게 해체한 ‘여인’ 연작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그의 그림에서는 복잡한 형상이 줄어들고 유연한 선과 넓은 여백이 두드러졌다.

 

미국 이주 초기 생계를 위해 주택 페인트공으로 일했던 경험도 그의 화풍에 영향을 미쳤다. 건물을 칠할 때 다루던 큰 붓과 페인트는 이후 거침없는 붓질을 구사하는 밑바탕이 됐다.

 

같은 공간에 걸린 구사마 야요이의 반복적인 점과 그물무늬, 피터 핼리의 기하학적 화면도 추상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구사마의 ‘인피니티 도트(AB)’(2003)는 물방울무늬가 화면 전체로 증식하는 듯한 모습이다. ‘실버 인피니티 네트’(2014)에서는 은색 안료로 그린 그물무늬가 조명과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빛을 낸다. 특히 핼리는 사각형과 이를 잇는 선으로 현대 도시의 폐쇄적인 공간과 제한된 연결망을 표현했다. 그가 ‘세포’와 ‘감옥’이라 부르는 사각형은 아파트와 사무실을, 이를 잇는 ‘도관’은 전선과 통신망을 뜻한다. 서로 연결된 듯하지만 정해진 통로를 벗어나기 어려운 도시인의 삶을 빗댄 것이다.

 

‘현대회화 하이라이트: 시대의 초상’ 전시 전경.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현대회화 하이라이트: 시대의 초상’ 전시 전경.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전시장의 마지막 공간 ‘형상의 부활’에서는 인물과 풍경이 다시 화폭의 중심에 등장한다. 그러나 익숙한 대상을 그리는 방식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조지 콘도(1957∼)의 ‘경영진들과 그들의 아내들’(2011)은 언뜻 상류층 인사들의 단체 초상화처럼 보인다. 벌거벗은 여성들 옆에 턱시도에 나비넥타이를 맨 남성들이 한데 모여 있지만, 번듯한 옷차림과 달리 얼굴은 영 딴판이다. 부릅뜬 눈과 비뚤어진 이목구비, 뒤틀린 표정은 우스꽝스럽다가도 섬뜩하다. 사회적 지위와 부를 과시하는 듯한 인물들이지만 일그러진 얼굴에서는 위엄을 찾아보기 어렵다. 콘도는 불안과 탐욕, 광기 등 여러 심리 상태를 한 화면에 담는 자신의 표현 방식을 ‘심리적 입체주의’라고 부른다. 피카소를 비롯한 과거 거장들의 화풍을 끌어온 이 기괴한 초상에는 권력과 허영을 향한 풍자가 배어 있다. 정장 차림 남성과 나체의 여성을 한 화면에 배치한 구도는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떠올리게 한다. 여성을 남성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장식처럼 다루는 사회에 대한 풍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수영장과 강렬한 햇빛을 그리며 이름을 알렸던 데이비드 호크니(1937∼2026)는 2000년대 들어 고향 요크셔로 돌아와 주변의 자연에 몰두했다. 계절에 따른 변화가 크지 않은 캘리포니아와 달리 고향의 숲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꿨다. 이 시기에 그린 ‘더 많은 월드게이트 통나무, 2009년 10월 13일’(2009)에는 영국 요크셔의 숲길에 베어낸 통나무들이 쌓여 있다. 통나무와 땅에는 붉은 기운이 감돌고, 그 주변을 짙은 초록빛 숲이 감싼다. 깊숙이 뻗은 길은 원근감을 드러내지만 선명한 색채들은 평면 위에서 강렬하게 맞부딪친다. 잘려 나간 나무들이 놓인 풍경인데도 화면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미화 독립 큐레이터는 “19세기 이후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볼 것인가, 어떻게 그릴 것인가의 변화”라며 현대회화의 흐름을 이해하려면 시대에 따라 달라진 화가들의 시선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1월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