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 새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언의 후폭풍이 일파만파 거세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힘겹게 싸우는 와중에 대통령 선거까지 치른다면 자칫 국가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임기 만료 후에도 “전쟁 수행”을 이유로 계속 권좌를 지키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통성 약화와 협상력 감소 또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2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최근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가 선거 준비를 위해 최소 60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젤렌스키는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우크라이나 헌법상 계엄령 하에선 대선이든 총선이든 실시할 수 없다. 2019년 5월 취임한 젤렌스키의 5년 임기는 2024년 5월 진작에 끝났다. 하지만 계엄령이 발동 중이라 대선이 계속 미뤄져 젤렌스키는 어느새 2년5개월가량 추가로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젤렌스키를 겨냥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며 “우크라이나에 새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선거 없는 임기 연장’이라는 젤렌스키의 약점을 공략한 것이다. 사실 ‘계엄령을 일시 해제하고 대선을 치르자’는 주장은 우크라이나 야권에서도 나왔다. 이에 젤렌스키는 “지금 선거를 치르는 건 우크라이나를 갈라놓을 ‘쓰나미’가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우방인 미국마저 젤렌스키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서자 우크라이나 정부로서도 대응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젤렌스키가 ‘선거 준비 기간 60일’을 꺼내든 것도 그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계엄령을 일시 해제하고 대선을 실시하려면 최소 60일 동안은 러시아와 휴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러시아 정부와 언론은 앞서 “우크라이나에 새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트럼프 발언을 크게 환영했다. 그간 ‘임기가 끝나 대통령직을 상실한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를 대표해 휴전 및 종전 협상에 나설 자격이 없다’는 논리를 펼쳐 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유리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만 크레믈궁은 우크라이나가 요구한 ‘선거 준비를 위한 60일 휴전’은 수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 60일 동안 우크라이나가 겉으로는 대선 후보들이 선거 운동을 하는 척하며 실은 러시아를 겨냥한 대대적 반격을 준비할 가능성이 농후다는 이유에서다. 푸틴의 측근인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대선 투표 당일에만 휴전을 명령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계엄령을 일시 해제하고 대선을 치른다면 젤렌스키에 도전할 가장 유력한 후보로 미하일로 페도로우(35) 전 국방부 장관이 거론된다. 우크라이나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페도로우는 지난 8월 “장기화된 전쟁 속에서도 완전한 민주적 절차를 회복해야 한다”며 “민주주의는 러시아에 인질로 잡힐 수 없다”는 말로 젤렌스키에게 대선 실시를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