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세탁하던 대포통장 조직이 범죄에 쓴 계좌가 ‘지급정지 대상’이 되는 점을 역이용해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 146명에게서 23억원을 뜯어냈다. 계좌 정보를 빼돌려 준 은행원 2명도 한통속이었다.
충북 청주청원경찰서는 13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공갈 등 혐의로 이른바 ‘사슬팀’ 총책 20대 A씨 등 10여명을 붙잡아 9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제2금융권 은행원 등도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법은 단순하면서도 치밀했다.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 피해금이 거쳐 간 계좌는 모두 거래가 정지된다. A씨 일당은 도박사이트의 자금 보관 계좌에 20만∼50만원을 입금해 이 계좌를 ‘보이스피싱 연루 계좌’로 만든 뒤 운영자들에게 “계좌를 지급정지시키겠다”고 협박했다. 불법 사이트 운영자들이 신고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렸다. 이렇게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8월까지 매달 300만∼500만원씩, 총 23억2000만원을 챙겼다.
이들은 텔레그램 등에 ‘계좌 대여 시 100만원 지급’이라는 광고를 올려 대포통장 81개를 모았다. 이 계좌로 들어온 보이스피싱 피해금 약 3억6500만원을 가상자산으로 바꿔 해외 조직에 넘겼다.
협박 대상을 찾는 데는 은행원들이 동원됐다. 브로커를 통해 접촉한 은행원 2명은 도박사이트의 자금관리 계좌 정보를 넘기고 각각 370만원, 9000만원을 받았다. 이 중 1명은 보이스피싱 이상 계좌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범죄를 막아야 할 자리에서 범죄를 도운 셈이다.
경찰은 지난해 1월 첩보를 입수해 1년 9개월간 수사한 끝에 일당을 검거했으며 범죄수익금 5억3204만원을 기소 전 추징 보전했다. 통장을 넘긴 명의자 80명도 수사 중이고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과 도박사이트 운영자 등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통장이나 계좌번호, 공인인증서를 넘기거나 빌려주면 범죄에 악용될 뿐 아니라 본인도 처벌받을 수 있다”며 “금전적 유혹에 넘어가 금융정보를 넘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