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적’이라고 해야 할까. ‘비현실적’이란 표현도 충분히 가능하다.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뜻을 굽힐 낌새가 없으니 ‘뚝심이 있다’고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지난달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북한군 지뢰 폭발 사건과 관련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살펴보며 떠올린 생각이다.
첫 반응이 나온 건 지난 2일이었다. “불행한 일”이라고 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대화도 제안했다.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사고인지, 도발인지 입장을 밝히라”는 야당 의원들의 압박에 “그 의도는 아직 최종 발표가 되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지뢰 폭발사고로 지금 규정하고 있다. (도발인지는) 지금 검증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북한의 책임을 강력히 추궁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적대와 증오가 이렇게 만든 것이다. 이것을 해소하는 것이 근본대책”이라고 강조했다. 12일 열린 언론간담회에서도 “(북한의) 공격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정 장관이 유화적인 표현을 써가며 폭발 사건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 가는 것과는 명백히 상반되는 두 갈래의 흐름이 있었다.
우리 군의 입장이 하나다. 군은 지난달 28일, 폭발의 원인이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폭발 지점은 군사분계선(MDL) 남쪽 10여m 지점으로 봤다. 지난 5일에는 북한군 지뢰가 원인임을 분명히 하는 한편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다음날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며 “국가안보를 위해하는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영승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8일 국정감사에서 “도발이 아니라는 생각은 1도 없었다”고 밝혔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다. 폭발 사건에 대한 첫 반응은 막말이었다.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지난달 30일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해 “서울의 자작광대극”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군이 예고한 ‘상응 조치’에 대해서는 ‘보복 조치’ 운운하며 위협했다. 외무성은 6일 담화를 발표해 “우리 영토를 1㎜라도 침범한다면 조선(북한)의 국경 무력은 즉시적이며 강력한 대응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
정 장관의 신중한 태도는 충분히 납득이 간다. 대화, 교류를 통해 남북한이 평화롭게 공존할 방안을 모색하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지향하는 걸 책무로 하는 통일부 장관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우위, 힘에 의한 억지력 확보에 전력해야 하는 국방부, 군과 북한에 대한 접근이 달라야 한다. 적대적 감정을 배설하듯 막말을 퍼부으며 북한이 수준 낮게 구는 것에 일일이 대응할 것도 없다. 대북정책 책임자로서의 체통,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면 된다.
그러나 단호할 때는 단호해야 한다. 북한군이 MDL을 넘어와 설치한 지뢰 때문에 우리 군 간부 3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우리 국민의 안전에 대한 직접적 위해다. 공격, 도발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책임을 묻고,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적대, 증오인가.
매섭게 압박하지 않으면 북한의 책임을 희석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북한은 정 장관의 발언을 자기네들의 발뺌에 활용했다. 김여정은 지난 8일 담화에서 “정동영도 우리 공화국의 고의적 공격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스스로 고백했다”고 강변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우리 대표가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자 북한 대표는 ‘한국 당국자’가, 즉 정 장관이 북한의 고의적인 공격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북한이 남북한을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적개심만 드높이는 상황에서 우리의 ‘전략적 인내’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단호해야 할 때 그렇지 못하면 안일하고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평화와 안보는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다. 위협을 정확히 인식하고, 잘못된 행동에는 분명하게 책임을 물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