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남정훈 기자] 최근 KT가 2026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해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냈을 때 베테랑 우완 사이드암 우규민의 눈물이 화제를 모았다. 2003년 LG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우규민은 아직 한 번도 한국시리즈 마운드를 밟아보지 못했다. 2016년까지 뛴 LG는 1994년 이후 2023년에야 한국시리즈를 밟아본 팀이었고, 2017년 FA로 옮긴 삼성은 ‘몰락한 왕조’였다. 2024시즌에 KT로 옮겼는데, 마침 그해에 삼성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우규민에겐 한국시리즈와는 인연이 없는 줄 알았지만, 올해 마침내 우규민은 한국시리즈 마운드에 설 수 있게 됐다. 프로 데뷔 24시즌 만의 일이다.
우규민만큼 오랜 시간을 기다린 건 아니지만, 배구계에도 챔프전이 궁금한 사나이, 이른바 ‘챔궁사’가 있다. V리그 남자부 아니, 남녀부 14개팀 통틀어 유일하게 챔프전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팀이 딱 하나 있다. 해방되던 해인 1945년 창단해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만년 약체 이미지가 강한 한국전력이다. 2011~2012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한국전력의 지명을 받은 이래 쭉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있는 선수가 있었으니, 한국전력의 혼이자 심장이라 불리는 서재덕. 유독 동안이라 얼굴을 보면 나이가 가늠 안되지만, 1989년생인 서재덕도 어느덧 한국 나이론 서른여덟. 마흔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서재덕에게 챔프전은 미지의 영역이다.
V리그 14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서재덕. 과연 2026~2027시즌에 서재덕은 챔프전 무대를 밟아볼 수 있을까. 간절한 마음으로 다이어트와 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서재덕을 지난 12일 오산에 위치한 한국전력 빅스톰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공식 기자회견을 마친 뒤 주어진 개별 인터뷰 시간. 본 기자는 서재덕과 올 시즌 FA로 한국전력에 합류한 세터 이민규를 만났다. 한 시간 여를 인터뷰인 듯, 수다인 듯한 시간을 보내며 두 선수가 올 시즌에 임하는 각오와 준비 상황 등을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는 서재덕에게 다이어트는 숙명이다. 다이어트 근황을 묻자 서재덕은 “제겐 그저 일상이죠”라고 답했다. 옆에서 듣던 이민규는 “저희가 볼 운동을 한참 하고 있으면 재덕이형은 러닝머신을 뛰면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요”라며 거들었다.
이제 V리그 남자부에는 1980년대생이 거의 남지 않았다. 그 중 챔프전을 경험해보지 못한 건 서재덕이 유일하다. 챔프전 얘길 꺼내자 서재덕은 “민규가 좀 좋은 기운을 줬으면 좋겠어요. 챔프전은 물론 우승을 두 번이나 해봤잖아요”라면서 “나 우승까지도 안 바란다. 챔프전이라도 한 번 밟아보자고오~”며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OK저축은행의 창단 멤버였던 이민규는 프로 2~3년차 시절인 2014~2015, 2015~2016시즌에 송명근, 송희채까지 이른바 ‘경기대 3인방’과 로버트랜디 시몬(쿠바)와 함께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한 바 있다.
이민규는 이적 첫해인 올 시즌 한국전력의 주장을 맡았다. 팀 내에서 최고참인 신영석(40)과 서재덕, 한 살 위인 리베로 정민수도 있고, 이적 첫 해에 주장을 맡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대해 서재덕은 “민규가 저희 팀에 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저나 영석이형은 어쨌든 우승에 실패한 주장이니까, 저희는 좀 그런 미신이 있거든요. 우리가 맡으면 안 된다, 그런. 이런 상황에서 민규가 저희팀 오니까 바로 밀었죠”라고 설명했다.
서재덕은 정말 특이한 유형의 선수다. 성균관대 재학 시절까지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로 뛰던 서재덕은 프로에 와서 아웃사이드 히터로 전향했다. 대학교 때까지 리시브 연습도 거의 안 하던 선수가 리시브가 숙명인 아웃사이드 히터라니. 말이 되지 않는 포지션 전향이다. 그러나 서재덕은 타고난 천재성과 센스로 리그 최고의 공수겸장 아웃사이드 히터로 성장했다. 물론 대표팀에서는 아포짓 스파이커를 맡았다. V리그와 대표팀에서 포지션을 달리하면서도 둘 다 척척 해내는, 그야말로 만화 같은 선수다.
다만 그도 이제는 30대 후반에 접어들었기에 팀에서 주역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다. 서재덕이 36경기 전체를 소화하기엔 체력적으로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선 서재덕이 코트를 밟는 시간이 줄어야 할 것 같다”라고 묻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후배들이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올라와 줘야죠”라고 답했다. 이어 “(윤)하준이가 진짜 많이 늘었어요. 신인 때도 하준이가 공격력은 진짜 좋아써요. 근데 결국 리시브가 좀 안되니까, 제가 감독이었어도 하준이를 주전으로 쓰기 쉽지 않았을거에요. 근데 이번 비시즌 동안 리시브 연습을 진짜 많이 했으니까 한 번 지켜봐주세요”라며 2006년생의 3년차 후배 윤하준을 치켜세웠다.
배구에서 리시브란 기술은 참 묘하다. 프로에서 10년 이상 해도 잘 늘지 않는 게 리시브다. 반면 서재덕은 프로 데뷔 전까지 제대로 연습도 안 하다가 프로에 와서 장착했다. 서재덕에게 물었다. 리시브는 재능의 영역인가, 연습으로 커버될 수 있는 기술일까. 그는 “결국 실전 경험이라고 봐요. 실전에서 실수도 많이 하고 그래야 자기 노하우가 생기거든요. 물론 재능도 필요하긴 해요”라고 답했다. 옆에서 듣던 이민규도 일본 남자배구의 간판 이시카와 유키를 예로 들며 “이시카와를 보면서 많이 느껴요. 저희가 한창 대표팀에서 뛰던 때만 해도 이시카와가 진짜 리시브 못했거든요. 코트에만 들어오면 저희 목적타 대상이었소, 플로터 서브 툭 넘겨줘도 어택라인에 올리는 게 고작이었던 선수인데, 지금은 리시브를 잘 하는 것을 보면 많은 훈련과 경험으로 늘릴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2025~2026시즌 최종전이 펼쳐졌던 지난 3월18일 수원체육관에서 서재덕은 펑펑 울었다. KB손해보험과의 경기에서 승리도 필요없이 풀 세트 접전 끝에 패해 승점 1만 챙겨도 봄 배구 진출을 할 수 있었지만, 결과는 0-3 셧아웃 완패. 결국 승점 1이 모자라 봄 배구에 나가지 못했다. 서재덕은 “제가 원래 좀 감정적인 사람이긴 해요. 올 시즌에 만약 챔프전에 진출하게 된다면 펑펑 울 것 같아요. 그래도 한 번은 가봐야하지 않겠어요. 그래야 은퇴해도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라고 각오를 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