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40대 아버지가 네 살배기 딸과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친모의 거듭된 안전 확인 요청에도 위험 징후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14일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호주에 거주하는 친모 A씨는 “B씨(전 남편)와 자녀 반환 문제로 소송 중인데 지난 1일 2심에서 승소했다. 이에 B씨가 어린이집에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간다’고 잠적했다. 남편이 딸을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고 지난 2일 경찰에 보호조치를 요청했다.
그러나 10여일 뒤인 지난 12일 오후 6시8분 딸은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한 주차장 내 렌터카에서 아버지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차 안에서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발견됐다.
경찰은 판결문 등을 받지 못한 데다 정식으로 접수한 112신고가 아니라고 판단해 실제 수사에 나서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위험을 우려하는 신고를 받고도 경찰이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지 않으면서 사전에 비극을 막을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A씨는 올해 3월 말쯤 딸 양육권을 놓고 남편과 벌인 ‘헤이그 아동반환청구’ 재판에서 승소해 서울에 있던 딸을 데려올 수 있는 강제집행 허가를 받았다.
헤이그 아동반환청구(국제적 아동탈취의 민사적 측면에 관한 협약)는 16세 미만 아동이 불법적으로 이동되거나 유치되어 양육권이 침해되었을 때 원래 상거소국(아이의 거주국)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관할 법원에 청구하는 절차다.
하지만 남편이 딸을 데리고 서귀포시로 이동하고 항고 소송이 7개월 가까이 이어지면서 딸을 되찾지 못했다.
A씨는 지난 4월 중순에는 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실종신고도 했다. 당시 경찰은 부녀와 영상통화로 신변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달 초 항고심에서도 승소한 A씨는 다시 한번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딸은 열흘 뒤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A씨 요청 등에 따라 단독 또는 행정시 아동보호팀과 함께 이들 부녀를 8차례 대면 조사하는 등 꾸준히 관리했지만 위험 징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는 입장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28일 경찰이 남편과 연락했을 때도 특이 사항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A씨는 B씨가 호주에서 아이를 데려와 한국으로 떠나자 아동·약취유인 및 아동학대 혐의로 제주경찰청에 신고했으며, B씨 또한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서울 성동경찰서에 신고했으나 두 사건 모두 혐의가 없어 불기소 처리됐다.
경찰은 “폭행이나 협박 등 불법적 행위가 있어야 약취·유인 혐의가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재판에서 강제집행 허가를 받았다고 해도 경찰에게 개입할 의무나 강제집행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결과적으로 안타까운 비극이 일어났지만 경찰 입장에서는 중립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경찰은 또 남편이 과거 호주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트라우마 증상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했지만 증상이 완화됐다는 의사 소견이 있고 과거 자살 시도 이력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