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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힙합을 정의하려 하지 않아… 이렇게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발전” [탐사기획-한국힙합 홍대에서 BTS까지]

강명훈 ‘힙플’ 시니어 매니저

2000년 8월18일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3학년 김용준씨가 취미로 웹 커뮤니티 하나를 만들었다. 힙합플레이야(힙플)다. 이후 26년간 힙플은 래퍼와 팬을 잇는 통로였다. 대형 배급사가 받아주지 않던 인디 힙합 음반을 유통했고, 2002년부터는 래퍼들이 직접 진행한 대담 방송 ‘힙플라디오’로 비주류 음악인의 목소리를 전했다. 지금은 하루 2만5000명이 찾는 힙합 축제까지 연다. 스무 살 대학생 운영자는 마흔여섯의 대표가 됐고, 그가 응원 댓글을 남겼던 힙합 유튜브 채널 운영자 강명훈(29·사진)씨는 시니어 매니저로 힙플 콘텐츠팀을 이끈다.

지난달 8일 서울 마포구 힙플 사옥 근처 카페에서 두 사람을 함께 만났다. 2022년 힙플에 입사한 강 매니저는 ‘힙플라디오’를 인터넷 생방송으로 바꿔 래퍼 박재범·지코·양홍원 등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기획 공연 ‘힙플쇼’도 맡고 있다. 26년 생존의 비결로는 ‘청자 관찰’을 꼽았다. 그는 “특정 힙합만 선호하는 매체는 소비자에게 부담스럽다”며 “우리는 밥 먹을 때도 지금 누가 왜 하입(주목과 화제)을 받고 왜 떨어지는지 얘기할 만큼 힙합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한국힙합이 인터넷에서 자랐다는 통설을 “반은 맞고 반은 다르다”고 평가했다. 그는 “TV를 통한 유입, 마스터플랜(신촌의 힙합 공연장)과 홍대 클럽의 자생적 언더그라운드, 그리고 인터넷 세 갈래가 있었다”며 “쇼미더머니(힙합 경연 프로그램)에서 아마추어와 레이블 소속 래퍼, TV에 나오던 사람이 용광로처럼 섞이며 구분이 무의미해졌다”고 말했다.

강 매니저는 그 뒤의 변화를 짚었다. 래퍼라는 직업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력을 쌓아 가던 과정이 쇼미더머니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중은 편집된 디스전(서로를 공격하는 랩 대결)을 보고 래퍼의 행동을 잘못 이해하기도 했다”며 “씬(음악인과 팬이 이루는 활동 무대) 안에서 인정받기 전에 대중에게 먼저 보이는 구조가 됐다”고 했다.

한때 힙플 게시판은 래퍼와 팬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한국힙합의 쟁점을 정리해 가던 공론장이었다. 무명 래퍼들이 자작곡을 올리던 게시판에선 산이·테이크원 같은 래퍼가 활동했다. 그 역할은 이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로 넘어갔다. 강 매니저는 “파급력과 접근성, 양은 얻었고 질적인 의견 교환은 잃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커뮤니티에선 정제된 의견이 기록으로 보존되고 별로인 의견은 깎여 나가며 결론이 도출됐다”며 “SNS는 각자 의견을 빠르고 강하게 남기고 가는 휘발성 매체다. 더 자극적인 말로 추천 수가 높으면 이겨 버린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음악인에게 커뮤니티가 갖는 무게는 오히려 커졌다고 본다. 그는 “소극장 공연이 사라지고 신문·방송 등 기존 매체의 힘이 약해지면서 음악인의 서사에 커뮤니티가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며 “현역 래퍼들을 만나 보면 다들 커뮤니티를 살펴본다”고 했다.

힙합은 문화로 정착했을까. 강 매니저는 “정의하려는 게 없어지는 것 자체가 발전”이라고 답했다. 그는 “미국 사람들은 힙합이 언제 탄생했는지 몰라도 일상의 일부로 두고 왜 좋아하는지 알며 즐긴다. 그렇게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발전”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선은 분명했다. 그는 “그래도 힙합 아닌 건 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잘될 것 같아서 하는 건 힙합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문화의 조건으로 기록을 꼽았다. 그의 꿈은 한국힙합 박물관이다. 그는 “남겨야 과거가 보존되고 앞으로의 참고가 된다”며 “클럽에서 노는 사람과 정리하는 학자가 공존해야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힙플이 그동안 쌓아 온 뮤지션 인터뷰와 게시판 글이 그 기록의 출발점인 셈이다. 나아가 ‘한국힙합의 날’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