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힙합의 문익점을 꼽으라면 홍종화(64·사진) SM엔터테인먼트 고문을 빼놓기 어렵다.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왔듯 그는 미국 힙합 문화를 국내 대중음악에 접목했다. 그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 ‘문나이트’에서 만난 흑인음악의 리듬을 1990년 현진영의 데뷔 앨범에 옮겨 심었다. 홍 고문은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처음 영입한 1호 프로듀서 겸 작곡가다. 이수만·유영진 등의 곡을 작업했고, 이후 후학 양성에 뛰어들어 방탄소년단(BTS) 곡을 쓴 슈프림보이 등을 길러냈다.
지난 8월14일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그는 40년도 더 된 공책 한 권을 펼쳐 보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0년부터 써 온 음악 일기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곡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고, 곡명을 장르별로 적었다. 공책 뒤쪽에는 재닛 잭슨의 ‘리듬 네이션’도 적혀 있었다. 뮤직비디오에서 수십 명의 댄서가 힙합 리듬에 맞춘 군무를 펼쳐 그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곡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공책에 모으던 소년은 경희대 작곡과에 진학한 후 이태원에서 본격적으로 힙합을 만났다. 미군 부대를 통해 유통된 음반과 주한미군방송 AFKN의 음악 프로그램 ‘소울 트레인’이 통로였다. 그는 “오징어처럼 유선형으로 추는 춤이 너무 멋있었다”며 “힙합 리듬에 리듬 앤 블루스(R&B)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결부시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게 계기”라고 말했다. 테크노처럼 곧게 뻗는 리듬보다 몸이 절로 들썩이는 힙합 리듬에 마음이 끌렸다는 설명이다.
문나이트에서는 그 리듬의 힘을 눈으로 확인했다. 홍 고문은 그곳을 현진영, 구준엽, 강원래, 양현석, 이주노 등 춤에 빠진 이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던 무대로 기억했다. 힙합을 음반으로 만들겠다는 확신도 거기서 생겼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인데, 나 혼자 갖고 있기는 아까웠다”며 “내 친구들한테도 좋은 걸 소개하겠다는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냥 좋아서 했기 때문에 현진영 1집 전 곡 작곡에 일주일밖에 안 걸렸다”고 했다. 현진영 1집 크레디트에 ‘랩 메이킹’이란 용어를 국내 처음으로 적어 넣은 것도 그다.
힙합 음악을 만드는 것과 이를 방송 무대에 올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케이블TV가 등장하기 전, 방송국은 가수의 머리와 복장까지 규제했다. 홍 고문은 “현진영과 와와 1집 의상은 외국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귀공자 스타일이었다. 전혀 힙합 같지 않은 힙합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대중음악은 ‘딴따라’, 힙합은 ‘동네에서 노는 애들’이라는 인식이었다”며 “지금은 아이들을 케이팝(K-POP) 스타로 키우려 하지 않나.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고 말했다.
홍 고문은 래퍼 없는 아이돌 그룹을 찾기 힘든 지금의 케이팝을 ‘비빔밥’에 비유했다. 그는 “여러 가지가 어우러져 다양한 취향을 다 맞춰 준다. 디스하는 것도 자유이지만 팝에 힙합 요소를 넣는 것도 자유”라며 “61년 전 비틀스의 ‘예스터데이’가 그렇듯 100년 후에도 불릴 힙합이 클래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M 안에 EDM(전자 댄스 음악)과 R&B 특화 레이블이 있듯 언젠가 힙합 레이블도 직접 해보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아쉬움도 감추지 않았다. EDM이 팝과 결합해 시장이 커지는 사이 힙합과 R&B는 위축됐다는 진단이다. 그는 “퀸시 존스가 있었기에 마이클 잭슨이 탄생했듯, 문화를 이끄는 특출한 프로듀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래퍼에 대한 주문은 분명했다. 그는 “힙합은 다른 음악보다 더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다. 래퍼는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대변하는 메신저가 됐으면 한다”며 “이슈를 만들되 이슈에 머물지 말고 해결 방법까지 메시지로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트렌드는 변하지만 음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도 댄스 음악이었다. 장르 구분에 앞서 음악의 역할을 생각해 달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문화는 흘러가는 바람과 같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힘은 강하고, 막을 수는 없다. 여러분이 그 바람이 되어 달라. 따뜻한 바람이 되어 달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