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팀에 남은 인원이 몇 명인지, 내가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부터 확인해요.”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조모(27)씨는 동료의 임신 소식을 들으면 업무 공백부터 걱정이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과거 동료의 출산휴가 기간에 업무를 대신 맡았을 때 인력을 빨리 채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나도 나중에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된다면 내 공백으로 바빠질 동료들에게 미안할 것 같다”고 했다. 당시 조씨는 추가 업무에 대한 별도의 수당이나 보상도 받지 못했다.
축하받아야 할 동료의 임신 소식이 남은 직원들에게 업무 공백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사용 대상인 직원 역시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제도 이용을 주저하게 되는 상황이다. 기업이 업무 공백에 따른 인력 배치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정부도 지원제도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육아휴직 공백은 남은 직원 몫…휴직 당사자도 눈치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7월 발간한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육아휴직에 따른 업무 공백을 ‘남은 인력끼리 나눠서 해결한다’는 사업체가 44.4%로 가장 많았다.
문제는 이러한 업무 부담이 육아휴직이 필요한 직원들의 제도 사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한 주요 사유로는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과 ‘사용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 및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10년간 어린이집에서 근무해 온 장모(33)씨도 육아휴직을 썼을 당시 사업주와 직장 동료 눈치를 많이 봤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장씨는 “사업주 입장에서는 나를 대체할 인력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육아휴직을 쓴다고 말하기가 어렵다”면서 “단축 근무도 다른 교사가 나를 대신해 당직 서는 거라 눈치 보여 못 쓴다”고 말했다. 장씨는 임신 후 몸이 좋지 않아 일을 멈춰야 했지만 대체인력이 구해지지 않아 출산 두 달 전까지 직장에 다녔다고 전했다.
◆ 업무 늘어난 직장인 70.5% 보상 못 받아…지원제도 활용도 저조
출산·육아휴직 등에 따른 직장 내 업무 부담 문제는 최근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11일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 중 47.8%는 동료의 출산·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자신의 업무량이 증가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업무량이 증가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 478명 가운데 별도의 보상을 받았다는 비율은 29.5%뿐이었다. 나머지 70.5%는 추가 업무를 맡고도 별도의 보상을 받지 못한 셈이다. 육아휴직자의 업무 공백을 메우는 책임이 기업이 아닌 남은 직원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출산·육아휴직 등에 따른 업무 부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업무분담 지원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을 사용하는 직원의 업무를 동료가 나눠 맡으면 사업주가 이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도록 정부가 사업주에게 장려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 제도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같은 조사에서 직장 내 업무분담 지원금 제도가 적극적으로 안내되고 실제 활용되고 있다는 응답은 12.4%에 불과했다. 제도는 안내되지만 실제로 활용되지 않는다는 응답(46.4%)과 안내도 활용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응답(41.2%)이 대부분이었다. ‘육아휴직 업무분담 지원금’을 알고 있다는 응답자는 37%에 그쳤다.
직장갑질119는 “모부성보호제도(일·가정 양립 지원제도)가 일터의 문화로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도를 사용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이 제도가 동료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로 운영된다면 현장의 불만과 저항은 커질 수밖에 없고 정작 필요한 노동자가 동료의 눈치를 보느라 제도를 사용하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 내 육아휴직으로 인한 갈등은 근로자 책임이라고 보기 어렵고 어떻게 업무를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대처할 문제”라며 “육아휴직은 사용하는 게 당연한 거고 이러한 제도가 활성화돼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현재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하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사용자와 근로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