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가도, 일본을 가도, 중남미와 유럽을 가도 K콘텐츠는 이제 낯설지 않아진 시대다. 단순 번역을 넘어 한국어의 ‘맛’을 살리고 각국의 정체성을 녹여낸 ‘로컬라이제이션’의 힘 덕분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넷플릭스는 15일 포시즌스호텔서울에서 K콘텐츠 글로벌 도약의 숨은 주역인 더빙과 자막 생태계를 조명하는 ‘글로벌 로컬라이제이션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캐서린 르타트(사진) 넷플릭스 글로벌 콘텐츠 로컬라이제이션 시니어 디렉터는 전 세계 넷플릭스 회원의 80%가 한국 콘텐츠를 시청한 경험이 있다며 로컬라이제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징어 게임’ 시즌3의 경우 자막 37개어, 더빙 24개어가 제작돼 한국 작품으론 최대 규모 로컬라이제이션을 진행한 바 있다.
산더르 반데르풀 EMEA(유럽·중동·아프리카) 콘텐츠 로컬라이제이션 디렉터는 “유럽에는 자막을 선호하는 나라도 있고 전통적으로 더빙을 선호하는 나라도 많다”며 “다만 젊은 세대는 휴대전화를 보면서 TV를 함께 시청하는 등 멀티태스킹에 익숙해, 과거 자막 중심이던 시장에서도 더빙 선호가 높아지는 추세”라고 지역적 특성을 설명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로컬라이제이션은 단순 번역을 넘어 한국어의 미묘한 ‘맛’을 살리고 있다. 존 드미타 UCAN(미국·캐나다) 시니어 매니저는 ‘오빠’와 같은 한국 고유 표현을 옮길 때 인물 간 관계와 문화적 맥락이 중요하게 본다고 짚었다. 가족, 연인, 연상 남성 친구를 모두 지칭할 수 있어서다. ‘기생충’ 번역가로도 잘 알려진 달시 파켓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도 최근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을 번역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극 중 한 인물이 다른 부부에게 ‘남편을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을 처음 봤다’고 말한 장면이다. 파켓 교수는 단순 번역만으론 한국어의 맥락과 문화적 정서를 담을 수 없어 제작진과 이를 긴밀히 논의했다고 떠올렸다.
AI가 성장하며 번역의 자리가 위태해지고 있지만, 넷플릭스는 인간성과 문화가 담긴 로컬라이제이션 작업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제니 로스 UCAN 콘텐츠 로컬라이제이션 디렉터는 “AI가 재능 있는 이들을 돕는 도구는 되겠지만, 전문가들의 작업을 대체할 것이라곤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며 “‘가능한 사랑’의 사례처럼 세력되고 우아한 감정을 담은 작품의 번역은 사람만이 재현할 수 있다. 로컬라이제이션은 하나의 기술이고, 어떻게 보면 예술이다. 내가 아는 한 AI는 예술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AI 대체’에 선을 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