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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미래] 한국이 기후대응 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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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알지만 행동은 미적
초강대국 물러서는 빈자리에
韓 나서주길 바라는 기대 많아
‘한국형 녹색대전환’ 보일 기회

지난 3일부터 태국에서 열린 ‘2026 방콕기후행동주간’에 다녀왔다. 기후주간은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일주일 동안 모여 기후대응 해법을 논의하는 자리로, 런던·뉴욕·상하이 등 세계 곳곳에서 열린다. 올해로 2회차를 맞은 방콕기후주간에서는 260여개 행사가 열렸다.

나는 기후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한 세션에 참여했다. 언론인, 캠페이너, 연구자 등 40여명이 하나의 질문을 붙들었다. 기후 이야기가 어떻게 아시아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을까. 진단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아시아의 기후 커뮤니케이션이 ‘알리는’ 단계에서 멈춰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후위기를 알지만 행동하지 않는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더 근본적인 문제는 말이 닿을 공간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론장은 양극화·파편화됐고 인공지능(AI)이 쏟아내는 콘텐츠와 허위 정보에 잠식되고 있다. 같은 언어로 말해도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 메시지가 흘러갈 길이 이미 갈라져 있다.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도 깊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현실과 해결된 미래 사이의 간극이 너무 깊다. 청정에너지로 돌아가는 아시아를 선명하게 그려낸 이는 없었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탄소중립을 이룬 한국 사회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다들 불가능하다고만 한다.

당장 사람들을 움직이는 건 희망이 아니라 위기감이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가 에너지를 안보의 문제로 바꿔놓았다. 대만 유사시 주변 해상로가 막히면 일본은 다음 날 에너지 공급이 끊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위기를 직접 겪은 나라는 이미 움직였다. 대규모 전력난을 겪은 베트남은 에너지와 기후대응을 국가안보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기후대응은 ‘음, 그렇지’로 끝나지만, 안보 문제는 피부에 확 와닿는다.” 한 참석자의 말이 핵심을 찔렀다.

물론 위기감이 늘 좋은 방향으로 가지는 않는다.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로 일본은 다변화 대신 액화천연가스(LNG)를 더 사들였고, 남는 물량은 동남아에 되판다. 인도는 러시아산 LNG 구매로 돌아섰고 태국도 마찬가지였다. 위기감이 청정에너지가 아니라 화석연료로 향한 것이다.

왜 그럴까. 위기의 해법을 누가 말하느냐와 무관하지 않다. 목소리가 큰 쪽은 화석연료 업계다. 일본의 한 에너지 대기업은 영화관 광고와 반값 영화표로 친환경 이미지를 산다. 반대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화석연료 기업이 주요 광고주라 비판 기사가 취재 단계에서부터 막힌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듣는 쪽도 무덤덤하다. 화석연료 보조금 덕에 가격 상승을 체감하지 못하는 대중은 에너지에 관심이 없다. 한국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방콕에서 만난 이들의 시선은 한국을 향해 있었다. 초강대국은 물러나는데 그 빈자리를 채울 나라가 없다. 참석자들은 지금을 전례 없는 시기라고 입을 모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은 파리협정을 비롯한 기후협력에서 잇따라 발을 뺐고, 유럽연합(EU)에도 기댈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 호주가 역사상 처음으로 홀로 서게 됐다는 말까지 들렸다.

그 빈자리를 한국 같은 중견국이 채워주길 바라는 기대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도 거론됐다. 위에서 밀어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를 거쳐 전환을 이뤄낸다면 그 자체로 아시아 이웃들에게 의미 있는 선례가 된다는 것이다.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와 1000조원 투자 계획을 담은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전략을 두고는 적어도 계획은 있지 않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한국이 해낸다면 아시아가 참고할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바람이 깔려 있었다.

반갑지만 무거운 기대다. 아직은 계획일 뿐이다. 이전 정권들도 목표는 내놓았지만 실행 과정에서 방향이 오락가락했다. 상상력의 격차를 메우는 건 더 나은 문장이 아니라 눈앞의 증거다. 그 증거를 보여줄 기회가 지금 한국에 와 있다. 한국이 해내면 아시아는 기후대응이 ‘가능하다’는 답을 얻는다. 실패하면 ‘역시 안 된다’는 핑계가 하나 더 생긴다. 아시아에 필요한 건 또 하나의 계획이 아니라 해낸 나라 하나다. 지금 전 세계가 한국을 지켜보고 있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