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에서 70대 남성이 별거 중인 60대 아내를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가정폭력과 스토킹 등으로 경찰에 8차례나 신고했고, 법원은 가해자에게 접근·연락 금지 조치까지 내렸다. 하지만 경찰은 가해자의 재범 위험성을 낮게 판단해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신청하지 않았고 스마트워치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처럼 위험 신호가 반복됐는데도 경찰이 참극을 막지 못한 흉악범죄가 최근 일주일 사이 5건이나 발생했다. 구멍 뚫린 치안에 국민의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가정폭력·교제폭력·스토킹 등 이른바 관계성 범죄가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겠다며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7월 대전·울산·의정부 등에서 스토킹·교제폭력 살인 사건이 잇따르자 접근금지 대상자의 위험성을 전수조사하고, 재범 우려가 큰 가해자에게 전자발찌 부착과 유치장 유치 등 강력한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경기 남양주에서 김훈(44)이 스토킹하던 여성을 살해한 뒤에도 전국 경찰서장이 수사·관리 중인 관계성 범죄 사건을 전수조사하고, 고위험 가해자 관리·감독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반복 신고가 살인으로 이어지고, 스마트워치나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범행이 벌어졌다. 비슷한 참극이 되풀이된다면 대책의 실효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에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청와대는 15일 하준경 정책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합동 범죄대책회의를 열고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관리·감독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강력범죄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다는 각오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비슷한 대책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무엇보다 기존 제도가 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부터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피해자 보호를 스마트워치 같은 장치에만 의존하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10월 12일까지 스마트워치를 받고도 살해된 피해자는 17명에 달한다. 피해자가 직접 버튼을 눌러 신고하는 방식만으로는 순식간에 벌어지는 범행을 막기 어렵다는 뜻이다. 가해자의 위치를 추적하는 전자장치와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스마트워치를 연동해 일정 거리 이내로 접근하면 자동으로 경보가 울리고 경찰이 즉각 출동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보호관찰 인력도 확충해 가해자의 준수사항 위반에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주의와 책임을 요구하기보다 가해자를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방향으로 보호체계를 전환해야 한다.
치안을 책임질 경찰청장 자리가 22개월째 비어 있다는 사실도 가볍게 볼 수 없다. 경찰은 세 번째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가뜩이나 수사권 확대와 조직 개편으로 경찰의 책임이 커진 상황에서 수장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내부통제는 느슨해지고 치안체계도 제대로 가동되기 힘들다. 현장 대응의 허점을 바로잡고 조직 전반의 책임성을 강화하려면 명확한 지휘·감독 체계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더 미뤄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