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도지사가 소방을 “재정 빨대”라니…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지난 9월11일은 2001년 미국 뉴욕 등에서 벌어진 9·11 참사 희생자 25주기였다. 그날 테러 집단이 납치한 항공기의 고의 충돌로 무너진 뉴욕 국제무역센터(ITC·일명 ‘쌍둥이 빌딩’) 남관 104층 사무실에 웰스 크라우더라는 24세 청년이 있었다. 그는 비행기와 부딪혀 폭발·화재가 발생한 77∼85층으로 내려가 인명 구조 활동을 했다. 유독성 연기를 피해 빨간 반다나로 코와 입을 가린 크라우더는 시민 18명의 목숨을 살리고 숨졌다. 훗날 생존자들은 크라우더를 “빨간 반다나를 두른 남자”(Man in the Red Bandana)로 기억하며 숭고한 희생에 경의를 표했다. 미국에서 군인 아닌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인 ‘대통령 자유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이 추서된 크라우더의 유품 중에선 뉴욕시 소방관 채용 시험 지원서가 거의 완성된 상태로 발견됐다.

16일 경기 부천의 한 공장에 큰 불이 나 진화에 투입된 소방관 1명이 순직하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화재 현장을 찾은 추미애 경기지사가 소방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으나 소방관은 등을 돌린 채 울먹이기만 했다. 뉴시스
16일 경기 부천의 한 공장에 큰 불이 나 진화에 투입된 소방관 1명이 순직하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화재 현장을 찾은 추미애 경기지사가 소방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으나 소방관은 등을 돌린 채 울먹이기만 했다. 뉴시스

미국의 16세 청소년 라이더 윌리엄스는 캘리포니아주(州) 산타크루즈 해변에서 수상 안전 요원으로 일했다. 지난 7월 물놀이를 즐기던 10세 어린이가 갑자기 몰아닥친 집채만 한 파도에 휩쓸렸다. 윌리엄스는 가장 먼저 달려가 아이의 몸을 꼭 붙들었다. 먼 바다로 떠밀려 가면 생명을 잃을 게 뻔했다. 파도의 위력이 어찌나 컸던지 어린이는 물론 윌리엄스조차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질 지경이었다. 다만 윌리엄스가 아이를 꽉 붙잡고 사력을 다해 2분가량을 버틴 덕분에 뒤늦게 도착한 동료 요원과 시민들이 가세해 가까스로 어린이를 살릴 수 있었다. 얼마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한 윌리엄스는 그를 “진정한 영웅”이라고 부르며 장래 소망을 묻는 트럼프에게 “소방관”이라고 답했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도 소방관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당시 국민안전처에 속한 소방청을 독립시켰다. 이어 2020년에는 소방공무원법을 고쳐 거의 대부분 지방공무원이던 소방관을 모두 국가공무원 신분으로 전환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많이 나아졌을까. 일선 소방관들은 “소방 분야 인사·예산은 중앙이 아닌 지방정부 권한으로 남겨둔 탓에 아직 온전한 국가직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한다. 그나마 소방 예산 일부를 국비에서 안정적으로 지원받도록 하는 입법이 이뤄진 점이 다행스럽다.

서울 은평소방서에 있는 ‘소방 영웅 6인 추모비’. 지난 2001년 3월4일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가정집에서 불을 끄던 중 건물이 무너져 내리며 순직한 소방관 6명의 얼굴과 당시 활약상이 새겨져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서울 은평소방서에 있는 ‘소방 영웅 6인 추모비’. 지난 2001년 3월4일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가정집에서 불을 끄던 중 건물이 무너져 내리며 순직한 소방관 6명의 얼굴과 당시 활약상이 새겨져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일선 소방 조직을 이끄는 시·도지사들은 선거로 뽑히는 정치인들이다. 자연히 가용 예산을 소방관 충원이나 소방 장비 확보보다는 선거 표심에 도움이 되는 선심성 사업에 쓰고 싶기 마련이다. 최근 국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나온 “소방은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는 추미애 경지지사의 발언에도 그런 속내가 담겨 있다. 소방관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하다. 16일 경기 부천의 한 공장에 큰 불이 나 진화에 투입된 소방관 1명이 순직하고 5명은 부상했다. 화재 현장을 찾은 추 지사는 소방관들로부터 차가운 외면을 받았다. 일부는 위로하는 추 지사에게 등을 돌린 채 울먹였다. 소방관을 평소엔 ‘예산 먹는 하마’로 여기며 폄훼하다가 누군가 희생되면 ‘진정한 영웅’ 운운하며 떠들썩하게 추모하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여실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