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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벌진트 "쇼미더머니, 돈은 몰아줬지만 작가의 힙합은 소외…잔치 끝내고 다음 먹거리 찾을 때" [한국힙합 정정보도]

[한국힙합 정정보도] 버벌진트 인터뷰 ②

‘잔치가 끝난’ 한국힙합, 심부름 앱 속으로 들어간 래퍼
“쇼미더머니, 돈과 인기 몰아줬지만 작가로서의 힙합은 소외됐다”
세계일보 탐사보도팀은 한국힙합 30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한국힙합 정정보도>를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습니다. 다큐 제작을 위해 만난 1세대 래퍼와 청년 래퍼, 평론가, 리스너와의 대화는 42분에 다 담기지 않았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온라인 연재로 이어 갑니다. 지면 4부작 시리즈는 인터랙티브 페이지(segye.com/investigative/k-hiphop)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전 세계가 지켜보듯 랩 대결도 관중이 TV로 보는 날이 올 것이다. 래퍼 버벌진트(본명 김진태·46)가 2005∼2007년쯤 프로게이머 출신 동료와 나눴다는 이야기다. 그 예감은 엠넷 ‘쇼미더머니’로 현실이 됐다. 그는 첫 시즌에 출연했고 뒤에는 프로듀서로 우승했다. 힙합이 비주류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한복판으로 들어오는 동안 그는 안에서 그 변화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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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한국힙합 정정보도> 인터뷰 중. 세계일보

그 뒤에는 바깥으로 나갔다. 2025년 초 9집 ‘해피 엔드’를 내고 생긴 공백기에 그는 심부름 앱 ‘해주세요’의 공급자로 일했다. 남의 집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원룸 서랍에서 여권을 꺼내 등기로 부치고, 현관 앞에 쌓인 쓰레기를 대신 버렸다.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은 ‘심부름꾼 코스프레’가 될 것 같아 접었다고 한다.

 

그가 보는 2026년의 한국힙합은 ‘한바탕 큰 잔치’가 끝난 자리다. 쇼미더머니가 몰아준 돈과 관심, 그 그늘에서 소외된 작가의 힙합, 아르바이트와 음악을 병행하는 청년 래퍼들, 그리고 다음 먹거리에 관해 물었다. ①편에 이어 일문일답.

 

◆쇼미더머니가 준 것과 가져간 것

 

―쇼미더머니 첫 시즌에 참여했다. 방송이 한국힙합에 준 것과 가져간 것은.

 

“쇼미더머니가 생기기 한참 전, 2005∼2007년쯤 얘기부터 해야 한다. 그때도 다음 세대 래퍼들이 막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스킬 면에서 되게 잘하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오버클래스(힙합 크루)에서 함께 음악하던, 프로게이머 출신으로 지금은 연예기획자인 웜맨(허용석)과 이런 얘기를 했다. 스타크래프트로 대결하는 걸 전 세계가 눈여겨보고 인기 스포츠가 되고 상금이 생기고 직업이 되듯, 랩도 그렇게 될 것 같다. 관중이 TV로 보면서 ‘얘가 더 잘했는데, 이 전략이 어땠는데’ 얘기하는 날이 올 것 같다고. 그게 쇼미더머니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엠넷이 그 기획을 안 했더라도 비슷한 게 분명히 나왔을 거다. 랩 하는 사람들이 너무 쟁쟁했고 에너지가 끓어오르는데, 그들을 모아서 ‘이게 이렇게 재밌는 거야’라고 보여줄 창구가 없었으니까. 다만 힙합에는 1대1로 이기는 스포츠적인 면과 동시에 하나의 예술 형식이라는 면이 있다. 쇼미더머니가 잘되면 잘될수록 작가의 작품으로서의 힙합 음악은 소외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돈이 몰리고 사람들 눈이 몰리게 해준 건 고맙다. 하지만 조금 다른 방식이었다면 경쟁에 강한 래퍼 말고 자기 색깔을 만들어내는 데 강한 뮤지션들이 좀 더 잘 먹고 잘 살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한다.”

버벌진트. 사진제공 브랜드뉴뮤직
버벌진트. 사진제공 브랜드뉴뮤직

―힙합이 주류가 됐지만 부를 과시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장르라는 비판적 시선도 있다. 과거의 편견이 모양만 바꿔 이어진다는 지적은.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최근의 일들도 있었고 내가 본 것도 있다. 하지만 어떤 위험을 감내하고서라도, 힙합이라는 틀 자체가 자기가 살아온 배경과 품어온 생각을 그 많은 가사로 풀어내라고 있는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혐오와 비하를 밥 먹듯 하는 사람이 가사를 쓰면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 그것마저 일부분이다. 그걸 보고 ‘힙합은 저열하다, 수준 떨어진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수많은 힙합 뮤지션 중 조금 썩은 부분을 먼저 잘못 접한 거다. 고향을 위한 가사를 쓰는 사람도 아주 많고, 혐오와 비하가 위주인 뮤지션들의 반대편에 서서 일부러 그들의 비중이 더 작아 보이게 만드는 뮤지션들도 많다. 처음 본 한국영화가 조폭 영화와 사기꾼 영화였다면 ‘한국영화는 맨날 조폭 얘기, 사기꾼 얘기라 싫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 한국영화가 산더미처럼 많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관심이 가는 사람은 더 찾아보고 되게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관심이 없다가 우연히 혐오 표현이 주가 되는 힙합을 듣고 싫어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한국영화가 다 조폭 영화가 아니듯 한국힙합도 그런 부분이 주류는 아니라는 것이다.”

 

◆심부름 앱 속의 버벌진트

 

―심부름 앱으로 직접 일을 했다고 들었다. 음악적 영감을 찾으려는 시도였나.

 

“스윙스(문지훈·40)의 유튜브에서 살짝 얘기한 적이 있는데, ‘해주세요’라는 앱이다. 영감을 얻기 위한 도구 같은 건 절대 아니었다. 2025년 초 정규 앨범 ‘해피 엔드’를 내고 나서 공백이 생겼다. 음악이 어차피 잘 안 나오는 시기였고, 컴퓨터와 건반 앞에 앉아 있는다고 그 시간만큼 뭔가 산출되는 직업도 아니다. 지금까지는 작업에 몰두하면 동굴 속에 들어가 친구도 가족도 남들에 비해 잘 안 만나고,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고 섞일 접점도 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시간이 확 비니까 일단 당황스러웠다. 뭐라도 해야겠다, 음악 세상 말고 바깥세상을 좀 보고 싶다, 그 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되게 강했다. 그래서 원래 이용자로 쓰던 앱에서 반대편, 서비스 공급자로 꽤 많이 활동했다. 너무 재미도 있었고, 중간에 ‘이거 유튜브 콘텐츠로 하면 재밌겠네’ 생각도 잠깐 했다. 그런데 그러면 버벌진트를 위한 ‘심부름꾼 코스프레’ 도구가 되는 것 같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잠깐 쉬고 있다. 갑자기 음악이 하고 싶어졌다. ‘해주세요’를 엄청 열심히 하던 시기는 버벌진트로서의 시기는 아니었지만 내 인생의 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또 언제 할 수도 있다. 재미있고 보람이 있으니까.”

 

―기억에 남는 심부름은.

 

“정말 다양했다. 순한 맛으로는 남의 집 강아지를 대신 산책시켜 주는 일. 90분에 얼마, 이런 식이다. 한 번 했는데 반려인이 나를 신뢰해서 고정적으로 맡긴 분도 있었다. 본인은 지방에 있는데 건대입구에 있는 자기 원룸의 하얀 서랍장 두 번째 서랍에 여권이 있으니 우체국 빠른등기로 급히 보내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분리수거를 못 하는 상황인 분들도 있다. 바빠서 밖에 있거나, 마음이 아파서 밖에 나가기도 싫은 사람이거나. 현관 앞에 내놓은 쓰레기를 버려달라는데, 버리는 곳이 그 아파트 엘리베이터만 타고 내려가면 되는 데인데도 그걸 못 하는 사람이 있다. 쓰레기 양은 이만큼이고(양팔을 벌리며). 아주 다양하다.”

버벌진트. 사진제공 브랜드뉴뮤직
버벌진트. 사진제공 브랜드뉴뮤직

◆청년 래퍼들에게

 

―요즘 홍대·신촌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청년 래퍼들을 주말마다 만나고 있다. 아르바이트와 배달을 병행하며 마이크를 놓지 않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감히 ‘어떻게 살아라’는 절대 입에 담을 수 없다. 멋진 것 같다. 정규 앨범 작업을 할 때마다 느끼는데, 깨어 있는 시간에 음악만 하는 게 아닌데도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두뇌가 거기 꽂혀서 친구가 ‘1박 2일로 어디 좀 가자’, ‘이것 좀 도와줘’ 해도 못 할 정도다. 하나에 몰두하면서 다른 걸 동시에 한다는 게 성립하기 쉽지 않은데, 직업으로서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뮤지션들은 그걸 하고 있는 거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피곤한 몸으로 집에 와서 만들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연습한다. 되게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한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그 속에서 다음 세대의 진짜 다이아몬드 같은 뮤지션이 나온다. 당신들 중 한 명이 진짜 랩 슈퍼스타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시기에는 알바하며 음악하는 게 마치 멋없고 쪽팔리는 것처럼 가사에 묘사되기도 했다.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뮤지션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고 음악으로만 돈을 벌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어차피 다양한 자아를 갖고 살아야 한다. 알바할 때 사장님한테 욕먹었다고 집에 가서 힙합 할 때 자존감이 구겨질 필요는 하나도 없다.”

버벌진트. 사진제공 브랜드뉴뮤직
버벌진트. 사진제공 브랜드뉴뮤직

◆젊은 친구들이 말을 걸어올 때

 

―루시갱 앨범의 피처링(다른 가수의 곡에 참여해 랩이나 노래를 더하는 것)을 잘 들었다. 요즘 젊은 아티스트들과는 어떻게 교류하나.

 

“루시갱 앨범은 래퍼 쿤디판다의 부탁으로 참여했다. 서로 피처링을 주고받던 사이인데, 쿤디판다가 추천하는 여성 아티스트의 정규 앨범이 나온다고 해서 이전 결과물을 들어보고 재밌을 것 같아 하게 됐다. 솔직히 지금 20대 초·중반에 힙합을 하는 사람들과 내가 능동적으로 교류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교류해야) 새 에너지도 받고 ‘요즘은 이렇게 하는구나’ 해법도 배울 텐데, 실생활 앞가림하고 내 앨범 준비하다 보니 먼저 다가가 말을 건 적은 드물다. 다만 너무 감사하게도, 젊은 친구들 쪽에서 참여를 부탁해 온다. 최근 제네 더 질라(이상용·32) 앨범의 리믹스에도 참여했다. 그들이 말을 걸어오면 ‘맞다, 이 친구 이런 부분이 재밌었지’ 하면서 디스코그래피(작품 목록)를 쭉 훑어본다. 덕분에 요즘 씬(활동 무대)이 어떤 음악으로 채워지고 있는지 어영부영 계속 느끼게 된다.”

 

―먼저 연락해 함께 작업한 경우는.

 

“2023년 8집 앨범 ‘K-XY : INFP’의 ‘연기자’라는 곡은 내가 먼저 (래퍼 언에듀케이티드 키드·김성우·29에게) 부탁했다. 작업하다 ‘여기는 이런 사람이 하면 재밌겠다’ 생각했다가 까먹기도 한다. 래퍼는 아닌데 최근 발견한 2인조 팀이 있다. 힙합보다는 R&B에 가까운데, 20대 때 열광했던 넵튠스(미국의 프로듀서 듀오) 사운드 같은 느낌이 나는 곡이 있었다. 이런 걸 하는 사람이 지금 세대에서 또 나오네, 하고 놀랐다.”

버벌진트. 사진제공 브랜드뉴뮤직
버벌진트. 사진제공 브랜드뉴뮤직

◆잔치는 끝났다

 

―처음엔 미국 문화를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가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한국힙합만의 색깔이 생겼다는 평가가 있다. 그 고유함은 뭔가.

 

“본고장인 미국 힙합의 기술적인 부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이제는 그게 너무 쉬워졌다고 할까, 체득이 됐다. 그래서 다들 편하게 그 기술을 도구 삼아 한국에 살고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것 같다. 적어도 한국은 길거리에서 총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으니까. 사실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고유성도 좋지만 동시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힙합이 가고 있는 것과 같은 코드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유성이라면 진짜 한국의 소재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는 삶의 물건들, 한국에서 잘나간다는 걸 상징하는 증표들. 그게 다른 나라와 다르고, 가사에 그대로 담기고 있지 않을까 싶다.”

 

―2026년의 한국힙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한바탕 큰 잔치를 끝내고 정말 다음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단계다. 현재 씬에 들어와 있는, 나보다 최소 열 살 이상 어린 사람들을 끌어들였던 화려하고 흥분되는 매력,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 장은 일단 끝난 것 같다. 지금은 각자 파편화돼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며 각개전투로 가는 시대다. 그러다 보니 외형 확장이랄까, 힙합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계기가 지금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버벌진트. 사진제공 브랜드뉴뮤직
버벌진트. 사진제공 브랜드뉴뮤직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런 기획을 해준 것에 감사드린다.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의 답이 어설플지언정 지나온 시간을 짚어보는 시간은 분명히 필요하다. 10년 후, 20년 후에도 ‘지난 10년은 어떻게 왔다, 지난 20년은 어떻게 왔다’를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 살려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