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무라야마 담화’를 포함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고 있다는 뜻을 16일 국회에서 재차 밝혔다. 이튿날인 17일에는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지만 직접 참배는 이번에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관련 질문에 “역사 인식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며 “무라야마 담화도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입헌민주당 쓰지모토 기요미 의원이 다카이치 총리의 과거 발언을 비판하며 질문한 데 따른 대답이다. 2015년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에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발표한 대로 다카이치 내각도 이 입장을 이어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 신인 땐 “반성 요구받을 이유 없다”…지금은 “매일 성장”
다카이치 총리는 신인 의원이었던 1995년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적어도 나 자신은 (전쟁의) 당사자라고 말할 수 없는 세대이기 때문에, 반성 따위는 하고 있지 않으며 반성을 요구받을 이유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도 2005년 월간지 기고에서 “이 분별없는 견해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범죄 국가의 국민’으로 자손을 옭아매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이던 2013년에는 “침략이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무라야마 담화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전후 50년이었던 1995년에 발표했다. 그는 이 담화에서 “아시아 사람들에 대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며 이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나타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1년 전인 지난해 10월17일 101세로 세상을 떠났다.
쓰지모토 의원이 과거 발언을 거론하며 생각이 바뀌었는지를 묻자 다카이치 총리는 “매일 성장하고 있다”고 답했다. 어떻게 바뀌었느냐는 물음에는 “전후 70년 아베 담화와 같이 미래 세대에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후인 지난해 11월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도 무라야마 담화와 관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과거에는 강경 우익 성향을 보이며 무라야마 담화 등을 비판하다가 총리 취임 이후에는 외교적 파장과 국제사회의 시선 등을 의식해 태도를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 취임 전엔 해마다 참배…총재 된 뒤로는 공물로
다카이치 총리는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간 열리는 야스쿠니 신사 추계 예대제(가을 제사)에 맞춰 ‘내각총리대신 다카이치 사나에’라고 적힌 명패가 있는 ‘마사카키’(真榊·비쭈기나무 화분)라는 공물을 보냈다.
총리 주변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예대제 기간 참배를 보류하는 방향이다. 외교 문제로 번지는 것을 피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참배 여부는 총리 본인이 적절히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해 자민당 총재 취임 이전에는 각료 재임 시절을 포함해 매년 봄·가을 예대제와 일본의 패전일인 8월15일마다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해 왔다.
그러다 자민당 총재가 되고 나서부터는 지난해 가을과 올해 봄 예대제 기간 직접 참배를 보류하고 공물만 보냈다. 지난 패전일에는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사비를 들여 공물료를 냈고, 가까운 니혼부도칸 주차장에서 신사를 향해 절을 올리는 ‘요배’를 했다.
참배 대신 공물을 보내는 것은 이시바 시게루, 기시다 후미오 등 전임 총리들의 전례를 따른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일본 안팎에서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2013년 12월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까지 반발한 이후 현직 총리가 참배한 적은 없다.
일본 언론은 다카이치 총리가 자신의 ‘대만 유사시’ 발언 이후 관계가 얼어붙은 중국, 개선 흐름이 이어지는 한국과의 외교 관계를 우선 고려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과는 올해 1월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나라현, 5월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안동을 오가며 정상회담을 열었다.
◆ 기우치 담당상은 첫날 직접 참배…8월엔 각료 4명
각료 중에서는 우에노 겐이치로 후생노동상과 기우치 미노루 성장전략담당상이 이번 예대제에 맞춰 공물을 봉납했다. 모리 에이스케 중의원 의장과 세키구치 마사카즈 참의원 의장도 각각 마사카키를 보냈다.
기우치 담당상은 공물에 그치지 않고 예대제 첫날인 17일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했다. 그는 지난 4월 춘계 예대제 때도 둘째 날 직접 참배했다. 다카이치 내각 각료가 예대제 기간 참배한 것이 확인된 첫 사례였다.
8월15일 패전일에는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 등 각료 4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다. 패전일에 각료 4명이 참배한 것은 아베 정권 때인 2020년 이후 처음이었다. 기우치 담당상도 이 가운데 한 명이다.
한국 정부는 당시 대응 수위를 높였다.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에서 “역사를 망각한 시대착오적인 행위를 한 데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추계 예대제와 올해 4월 춘계 예대제 때 논평에서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했던 것보다 강한 표현이다.
외교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국방부는 주한 일본 방위주재관을 각각 불러 항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