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홍천군 내면 광원리 오대산 자락에 은행나무 2000여 그루가 5m 간격으로 줄지어 선 숲이 있다. 1년 가운데 10월 한 달만 문을 여는 홍천 은행나무숲이다.
이곳은 국가나 지자체가 아닌 한 개인이 가꿔 온 땅이다. 아내의 병이 낫기를 바란 남편이 묘목을 한 그루씩 심은 것이 시작이었다.
은행나무 길을 걸을 때마다 발밑 열매 냄새가 마음에 걸렸던 이들에게도 반가운 숲이다. 나무 대부분이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여서다.
◆ 아내를 위해 찾아온 약수 골짜기
17일 홍천군에 따르면 숲 주인은 1985년 이곳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도시에 살던 그는 아내가 만성 소화불량으로 오래 고생하자 인근 삼봉약수가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터를 옮겼다.
그리고 아내가 낫기를 바라며 너른 땅에 은행나무 묘목을 하나둘 심었다. 그렇게 심은 나무가 무려 2000여 그루에 달한다.
삼봉약수는 숲에서 3㎞가량 떨어진 국립삼봉자연휴양림 안에 있다. 약수는 지난 2011년 1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처음 발견된 실론계곡의 이름을 따 한때 ‘실론약수’, ‘실룬약수’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지금 이름의 삼봉은 주변의 가칠봉·새양봉·가가봉 세 봉우리를 가리킨다.
그렇게 심은 묘목이 자라 지금의 숲이 됐다. 약 4만㎡ 땅에 은행나무가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어 가을이면 곧게 뻗은 숲길 양옆이 노랗게 물든다.
주인은 1985년부터 25년 동안 숲을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이후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2010년부터 해마다 10월에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 은행나무숲인데 고약한 냄새가 없다?
가을 은행나무 길에서 반갑지 않은 것은 밟혀 터진 열매가 풍기는 냄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이 냄새는 암나무에 열리는 열매에서 난다.
한국관광공사는 이 숲의 은행나무가 거의 수나무여서 은행 냄새가 풍경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소개한다. 열매를 주우려는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는 것도 그 덕분이다.
수나무만 골라 심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은행나무는 20년 이상 자라 열매가 열릴 때까지 암수를 구분할 수 없어서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성감별 DNA 분석법이 개발되기 전에는 열매 없는 수나무만 골라 가로수로 심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 초록이 남았을 때도, 잎이 다 진 뒤에도
한 달만 열리는 숲인 만큼 언제 가느냐에 따라 만나는 풍경이 다르다.
10월 초·중순에는 초록빛이 남은 잎과 노랗게 물든 잎이 섞이고, 하순으로 접어들면 숲 전체가 노란 터널이 된다. 잎이 지기 시작하면 바닥에 수북이 쌓인 은행잎을 밟으며 걸을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이 숲이 오대산 자락에 있어 기온이 낮은 탓에 다른 지역보다 단풍이 일찍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산림청이 지난달 22일 발표한 ‘2026년 한반도 단풍절정 예측지도’는 올해 은행나무 단풍 절정을 10월 30일로 내다봤다.
단풍이 10월 초 강원 북부 산지부터 물들기 시작해 하순에 전국적으로 절정에 이를 것으로 봤다. 산림청은 단풍이 50% 물든 때를 절정으로 본다.
홍천군도 개방 기간 안에 절정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고 안내한다. 다만 덜 물든 숲은 초록과 노랑이 어우러져 싱그럽고, 잎이 다 떨어진 뒤에는 바닥의 노란 잎과 나무 줄기·가지가 고요한 숲길을 만든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 약수 한 모금, 계곡 한 바퀴
한편 홍천군 문화관광포털은 은행나무숲 개방 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안내하고 있다.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사유지라 주인 사정에 따라 개방 일정이 바뀔 수 있다.
올해 개방 기간과 당일 운영 여부는 홍천군 관광안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숲만 보고 돌아서기 아쉽다면 숲 주인 부부를 이곳으로 이끈 삼봉약수를 맛보러 국립삼봉자연휴양림에 들를 만하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어우러진 숲에서 산책과 삼림욕을 즐길 수 있고 숙박시설과 야영장도 갖췄다.
숲 가까이에는 칡소폭포가 있다. 내린천 상류와 계방천 하류가 만나는 살둔계곡은 물이 맑아 열목어와 어름치가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