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종전기념일’로 부르는 매년 8월15일, 도쿄 야스쿠니 신사는 가관이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복장을 한 사람들이 욱일기를 앞세우고 행진하고, 감탄어린 시선과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있다. 주변국을 침략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공통점을 가진 독일 나치 복장을 하고 활보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일본이 벌인 여러 전쟁에서 사망한 이들을 추모한다며 도조 히데키 등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까지 합사한 이 곳은 일본 우익의 성지다.
일본 정치인들은 매년 특정한 날이면 직접 신사를 찾거나, 공물을 보낸다. 종전기념일, 춘·추계 대제 때에 그렇다. 최고 권력자인 총리의 행보가 특히 국내외의 주목을 받는다. 제국주의 시절 일본이 주변국에 끼친 가해의 역사에 대한 일본의 인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직접 방문이 두드러졌으나 최근에는 공물을 보내는 게 두드러진다.
◆악순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지난 17일 야스쿠니 신사 추계 제사를 맞아 ‘내각총리대신 다카이치 사나에’ 명의로 공물을 보냈다. 한국은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하거나 참배를 되풀이한 데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중국은 주일 중국대사관 대변인이 SNS에 글을 올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정신적 도구이자 상징”이라며 “중국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관련 부정적 동향을 강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일본 총리가 공물을 보내면, 한국과 중국 외교 당국이 나서 비판하는 건 매년 반복되는 패턴이다. 직접 야스쿠니 신사를 찾던 다카이치 총리는 2025년 취임 후에는 공물을 보내고 있다. 전임자인 기시다 후미오,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재임 중에는 공물을 보냈다. 이 때마다 한국, 중국 외교 당국은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명하며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예전에는 직접 방문이 적지 않았다. 스즈키 젠코 총리는 1980∼1982년 8월15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도 1985년 같은 날 공식 참배했다.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의 방문은 11년 만이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2001∼2006년 여섯 차례 참배하면서 갈등은 장기화했다. 2013년 12월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참배해 큰 파장이 일었다.
◆참배와 공물 사이…야스쿠니 속 정치·외교
두 가지 형태 모두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주변국에 끼친 심대한 피해를 반성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심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같다. 하지만 외교적인 의미에서는 차이가 있다.
일본 보수층에게 야스쿠니 신사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곳이다. 누가 집권해도 보수층의 이런 의식을 신경을 쓰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추모의 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주변국의 대응이다. 직접 참배는 한국, 중국의 비판 강도가 높은 것은 물론 최대 우방인 미국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 1985년 공식 참배했던 나카소네 총리가 한국, 중국의 강한 반발에 이듬해에는 참배하지 않은 건 그래서다. 2013년 12월 아베 총리의 참배 때는 한·일, 중·일 관계가 더욱 악화하고, 미국이 “일본 지도부가 이웃 국가들과의 긴장을 악화시킬 행동을 한 데 대해 실망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래서 자국 보수층의 기대에 일정 부분 부응하면서 외교적 충돌의 수위를 낮추는 절충안으로 공물 보내기를 선택했다.
◆해소되지 않은 분노
야스쿠니 신사는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곳이다. 이 때문에 외교 당국 간 분쟁 뿐만 아니라 분기탱천한 한국인, 중국인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싼 사건들은 일본과 주변국의 역사적 기억이 충돌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2011년 12월 중국 국적 남성이 야스쿠니 신사 정문에 불을 질러 일부를 훼손했다. 이 남성은 한국에서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투척해 체포됐는데, 일본 정부가 해당 중국인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는 데 우리 법원이 허가하지 않았다.
2015년 11월에는 한국인 전창한씨가 야스쿠니 신사 내 공중화장실에 폭발물을 설치해 천장 등을 파손한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법원은 그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2024년 5월에는 신사 입구 돌기둥에 한 중국인이 붉은색 스프레이로 영어 ‘TOILET’이 적고, 관련 영상을 SNS에 공개해 파문이 일었다. 같은 해 8월에도 동기둥에 중국어 낙서가 발견돼 일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