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사진) 일본 총리가 21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남성·세습 정치인 중심의 일본 정계에서 여성·비세습 정치인으로는 처음 총리 자리에 오른 그는 고공 지지율을 바탕으로 지난 2월 조기 총선에서 역사적 대승을 거둬 ‘다카이치 1강’ 체제를 구축했지만 외교·경제정책을 두고는 안팎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내각 지지율 여전히 높지만…
19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지난 16∼18일 18세 이상 1019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57%로 지난달 59% 대비 2%포인트 하락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지난달과 같은 30%였다. 유리천장을 깬 쇄신 이미지로 ‘사나카쓰’(사나에와 연예인 팬 활동을 뜻하는 오시카쓰의 합성어) 열풍을 일으키며 지난해 10월 내각 출범 직후 71%, 2·8 총선 직후 73%의 고공 지지율을 나타냈던 것에 비하면 지난 7월 이후 10%포인트 이상 하락한 상태로 보합세를 이어오는 중이다.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는 50%, 교도통신 조사에서는 49.1%를 기록해 마찬가지로 정체를 못 벗어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올해 초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중의원(하원) 해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획득하며 중의원 여소야대 정국을 단숨에 뒤집은 것은 물론 당내 지지기반이 부족하다는 약점도 메웠다.
하지만 지난 7월 여론과 동떨어진 왕실전범 개정 후폭풍으로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다. 총리 취임 후 일본유신회와 새롭게 연립정부를 구성하면서 약속한 보수적 정책을 추진하는 동안 고물가 대책 등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적 성과가 부족했던 점도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식료품 소비세율 인하(8%→1%), 의원 정수 축소 등 민생 정책과 정치 개혁 카드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보수·우경 노선 가속화
다카이치 총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의 단골 참배객이었고 한국이 독도에 구조물을 더 만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강경 우파’로 분류됐다. 아베 전 총리의 노선을 계승해 ‘여자 아베’라고도 불렸다. 이 때문에 전임 이시바 시게루 총리 때와 달리 한국에도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그러나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국 김과 화장품, 드라마를 좋아한다”면서 친근감을 드러냈고, 이재명 대통령과도 네 차례 만나 ‘셔틀 외교’가 정착됐다.
반면 중국과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대만 유사시 무력 개입’ 시사 발언으로 악화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중국이 핵심 광물 수출 규제, 여행·유학 자제령 등으로 압박해 오자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때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일본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서 사전 단속을 해야 했다. 최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일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남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를 방문하고 사할린에서 취재 활동을 벌이던 일본 기자가 간첩 혐의로 체포되는 등 러시아와의 관계도 경색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후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보류하고 있지만 광복절이자 일본 패전일인 지난 8월15일 멀리서 신사를 향해 절하는 ‘요배’를 통해 지지층과 주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지난 17일에는 가을 제사를 맞아 ‘내각 총리대신’ 명의로 공물을 보낸 후 한국, 중국 등 유감 표명이 이어졌지만 19일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공물 대금을 추가 봉납했다.
경제적으로는 인공지능(AI)·반도체 등 17개 전략 성장 분야에 대한 집중 투자 방침을 내놓는 등 확장적 재정정책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식료품 소비세율 인하 추진 등과 함께 일본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 엔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정보국 설치, 안보 3문서 조기 개정 추진, 비핵 3원칙 개정 검토 등 보수적 안보정책을 지속하는 가운데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위해 개헌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신회가 ‘전력 미보유, 교전권 포기’ 조항 삭제와 ‘국방군’ 규정 신설을 주장하는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는 최근에도 “헌법은 나라의 근간”이라며 “시대적 요구에 맞춰 정기적인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