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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 없는 외딴섬에서도 철거…日 상징에서 애물단지 된 자판기

주민 35명 데바지마, 고령화·관리 한계에 철거
가격 경쟁력 밀려…AI 도입 등 생존 모색
일본의 음료 자동판매기.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클립아트코리아
일본의 음료 자동판매기.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클립아트코리아

 

상점 하나 없는 일본의 한 외딴섬에서 주민들의 유일한 음료 구매처였던 자동판매기가 사라졌다. 일본의 상징과도 같던 자판기는 인구 감소와 수익성 악화 등으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20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시코쿠 본토에서 배로 약 15분 거리인 도쿠시마현 무기초의 외딴섬 데바지마에서 지난해 5월 마지막 남아 있던 자판기 2대가 모두 철거됐다.

 

데바지마는 주민이 약 35명에 불과하며 이 가운데 80%가 고령자다. 자동차가 한 대도 없어 손수레로 짐을 나르는 이 섬은 한때 1000명 가까이 살며 어업과 해초 채취로 번성했던 곳이다. 1960년대 이후 전기와 수도가 놓이면서 음료 업체들의 자판기 설치 제안이 줄을 잇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인구가 줄고 주민들이 나이가 들면서 최후의 보루였던 자판기마저 사라졌다. 섬에 있던 자판기는 주민 개인이 관리하던 것으로, 음료 업체가 항구까지 제품을 가져오면 주민들이 연락선으로 싣고 와 하나씩 채워 넣는 구조였다. 이후 관리 주민의 고령화와 건강 악화로 운반이 어려워진 데다, 대체 인력도 없어 결국 철거 수순을 밟았다.

 

자판기의 쇠퇴는 외딴섬만의 문제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일본 전역에 설치된 음료 자판기는 약 220만대로, 버블 경제 시기인 1985년 대비 23% 줄었다.

 

음료 매출의 90%가 자판기로부터 나오는 다이도(DyDo)는 지난 회계연도에 303억엔(약 2538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뒤, 지난 3월 보유 자판기 약 27만대 중 7.5%가량을 폐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비자들은 편리함을 이유로 자판기를 이용해 왔지만 최근 물가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음료 가격이 오르면서 편의점·슈퍼마켓·드러그스토어 대비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

 

일본 시장조사업체 음료총연에 따르면 자판기로 판매된 음료는 1997년 7200만 상자로 정점을 찍었다가 2024년 4200만 상자로 급감했다. 노동력 부족과 임금 상승도 재고 수급을 어렵게 하면서 자판기 시장의 발목을 붙잡았다.

 

독일 시장 조사 전문가 이본느 알프는 FT에 “자판기 시장의 쇠퇴는 기존 모델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신호”라며 “재고 현황 파악이 어렵고 상품 보충도 여전히 인력에 크게 의존해, 한 분석가의 지적대로 자판기는 ‘판매 시점에만 자동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들은 가격에 더욱 민감해졌는데 편의점은 더 다양하고 신선한 제품, 더 저렴한 가격을 제공하면서 자판기가 압박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판기 업계는 인공지능(AI)을 통한 판매량 예측 등을 도입하며 사활을 걸고 있다. 자판기가 사라진 데바지마의 주민들도 방법을 고안해 내고 있다. 섬으로 이주한 한 영국인 주민은 빈집에 남아 있던 냉장고를 이용해 무인 음료 판매를 시작했고, 한 민박집은 상점을 여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