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기호(54·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대한민국예술원(이하 예술원) 개혁을 촉구하는 소설집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문학동네)를 펴냈다. 2021년 예술원의 폐쇄적 구조를 비판하는 단편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발표하고 작가 744명의 서명을 모아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를 찾았던 그가 다시 한 번 불씨를 지폈다. 19일 광주대에서 만난 이기호는 “될 때까지 해보겠다”고 말했다.
소설집에는 표제작과 그 후속작 ‘우리는 왜 엉망이 되어가는가―예술원에 드리는 보고 2’를 비롯해 단편 7편이 실렸다. 표제작이 보고서 형식으로 예술원을 비판했다면, 후속작은 문제 제기 이후의 경과를 돌아본다. 개혁을 가로막는 소극적 문화 행정을 그리는 한편, 작가 자신의 속물근성도 겨눈다. 후속작을 쓴 배경에는 “벽에 몇 번 부딪히다 잘 안 되니까 손쉽게 포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있었다고 했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2021년보다 지금 더 커졌다”고도 했다.
1954년 설립된 예술원은 문학·미술·음악·연극·무용·영화 분야 원로 예술인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기관이다. 정원은 100명, 현재 회원은 82명이다. 각 분야에서 30년 이상 활동한 예술인 중 기존 회원의 의결을 거쳐 신규회원을 선출하며 매달 수당 200만원을 지급한다. 이기호는 회원의 무보수 명예직 전환과 기존 회원 중심의 선출 구조 개편, 종신제의 임기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예술원 개혁이 원로 예술인에 대한 예우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평생 예술에 헌신하고도 노후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원로 예술인을 지원하는 일은 마땅히 필요하지만, 예술원 회원 대다수가 사학연금을 비롯한 연금을 받는 대학교수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원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원 수당을 없애면 더 다양한 지원을 할 수 있잖아요. 연금이 없는 젊은 작가들도 ‘늙어서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계속 글을 써도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겠어요? 궁극적으로 예술원이 신진 예술가를 위한 조직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합니다.”
즉 그가 문제 삼는 것은 원로 예술인에 대한 지원 자체가 아니라, 이미 안정된 지위를 누리는 예술인에게 국가가 권위를 재부여하는 구조다. 교수이자 소설가인 이기호는 자신과 같은 이들을 반쪽 예술가라는 의미에서 “반예(半藝)”라고 표현한다. 교육자와 예술가라는 정체성이 서로 영향을 주며 이들의 예술이 “뻔한 미학 안에 갇힐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교수 출신 예술인 중심의 예우에서 벗어나, 문학 장르와 계파를 넘어 다양한 예술인에게 예술원 문호가 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1년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이기호는 제도가 바뀔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예술원법 개정안은 발의에 그쳤고,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실수였고 무지였다”고 그는 돌아봤다. 자신의 시도가 다른 문인들에게 무기력감을 안긴 것은 아닌지도 걱정했다. “제도가 쉽게 변하지 않고, 이런 제도가 계속 용인되는 게 당연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는 “함께할 사람들을 찾고 더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하지 못한 점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지난 과정을 복기하며 다음 수를 고민하는 그는 이제 소설 밖에서도 목소리를 낼 생각이다. 작가들이 연대해 온라인 릴레이 글쓰기를 하거나 성명을 발표하는 등 “보다 직접적이고 큰 목소리를 내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거기까지 가기 전에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개혁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만큼 밀린 원고 청탁을 처리할 시간은 빠듯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기호는 “지금 한국 문학이 너무 얌전해진 것 같다”며 “다른 모습을 보이는 작가도 필요하지 않나. 그게 내가 쓰는 글보다 더 의미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소설집에서 눈에 띄는 점은 마지막 수록작 ‘숫기란 무엇인가’를 제외하면 모든 작품의 화자가 ‘이기호’라는 사실이다. 소설 쓰는 ‘나’의 위치를 집요하게 들여다보며 자신의 위선과 소시민성을 드러낸다. 예술원을 비판하는 자신 역시 현행 체제에 깊이 연루돼 있음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문제 삼는 글쓰기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의 소설은 어디로 향할까. 이기호는 이번 소설집이 자신을 연상시키는 인물을 화자로 내세운 작업의 일단락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제는 “이기호라는 작가의 표상을 드러내는 인물군 말고, 다른 세계로 가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다는 것이다. 다시 눈길을 돌리는 쪽은 초기작에서 주로 그렸던 “비루하고 염치없”으며 “교양없고 막돼먹은”(‘최순덕 성령충만기’, 2004, ‘작가의 말’ 중) 루저들의 세계다.
“저는 문학이 막돼먹은 인간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 범죄자들과 가해자들을 독자가 이해하고 사랑하기 시작하면 기존 윤리와 규범이 바뀐다고 봐요. 천하 잡놈들을 다시 소설로 끌어올까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