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道家) 사상의 핵심 경전인 ‘장자(莊子)’에는 이런 취지의 글이 나온다.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혼란기에 수많은 사상가가 각기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다른 이들을 비판하던 시절의 얘기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함을 알려준 장자는 전국시대 송나라의 철학자였다. 본명은 장주.
그의 우화들은 경험과 관점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최근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소방 재정 빨대’ 발언이 화두다. 불과 일주일 만에 정치권에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을 몰고 왔다. 국정감사장에서 소방 재정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비유적 표현으로 등장한 ‘빨대’라는 단어가 설화를 키웠다. 잘못된 단어 사용이 불러온 언어 참사였다.
경기 부천시에서 창고 진화에 나섰던 젊은 소방관이 아내와 딸을 두고 목숨을 잃는 비극까지 겹치면서 추 지사에 대한 날 선 시선은 좀처럼 걷힐 것 같지 않았다.
19일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고(故) 김진석 소방위 영결식에서 추 지사는 눈물을 쏟았다. 국가직으로 전환된 소방공무원의 처우 개선과 안전이라는 하나의 얘기를 하려던 두 집단은 완전히 엇갈린 길로 빠진 듯 보였다.
◆소방노조 만나 “마음 다해 사과”
추 지사가 논란 일주일 만에 현장 소방관들을 만나 거듭 고개를 숙였다. 발언의 파장과 부천 공장 화재 순직 사건이 겹치며 여권 내부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소통을 통해 정면 돌파에 나선 모양새다.
추 지사는 20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 도지사 집무실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권영각 본부장과 박진규 경기지부장 등 노조 관계자들을 만나 “저의 불찰”이라며 몸을 낮췄다. 그는 “잘못된 단어 사용으로 마음에 상처가 컸다면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부천 순직 소방관 빈소 및 영결식에서의 조건부 어법 논란에 대해서도 “큰 사고 앞에 저의 설화가 시빗거리가 되는 상황이 맞지 않다고 여겨 마음속 진의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추 지사는 이번 논란의 본질인 ‘소방 재정의 구조적 기형’을 다잡으려 했다. 2020년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음에도 인건비 등 예산의 89.3%를 지방정부가 부담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정치적 질타는 달게 받겠으나 중앙정부의 국비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 개선만큼은 반드시 풀고 싶다”고 강조했다.
소방노조 측은 사과를 수용하면서도 현장의 실질적 변화를 촉구했다.
권 본부장은 “진심 어린 사과에 감사드린다”면서도 “소방 재정 확충은 소방인력 증원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천 순직 사고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현장 인력 충원, 야간 근무자 식대 지원 등 열악한 처우 개선이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정 빨대’ 발언이 쏘아 올린 재정 개혁
추 지사의 ‘재정 빨대’ 발언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소방공무원들의 처우 개선 문제를 도마 위에 올렸다.
2020년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예산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에 의존하는 ‘미완의 국가직 전환’ 논의에 불을 붙인 셈이다.
4000억원에 못 미쳤던 국비 지원은 국가직 전환과 함께 9000억원으로 2배 넘게 늘었지만 여전히 전체 소방 운영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예컨대 올해 전체 소방예산은 8조5000억여원으로 크게 늘었으나 국비의 비중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지자체별 예산 규모에 따라 처우와 복지 등이 차이가 나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움직임도 사실상 멈춰 서 있다.
소방공무원 근무 여건 개선을 예산편성에서 명문화하는 등 소방관을 보호하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내용이 담긴 법률안은 22대 국회에서 40건 넘게 발의됐지만, 절반 이상 계류되거나 폐기된 상태로 알려졌다.
◆거센 정치 후폭풍…與 징계 여부 논의
연이은 사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후폭풍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제복 공직자를 우롱한 역대급 망언”이라며 도지사직 사퇴까지 거론하는 등 공세 수위를 끌어올린 상태다.
여당 지도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 게시판과 지도부에는 추 지사에 대한 징계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추 지사에 대한 징계 여부를 정식 논의할 예정이다.
추 지사가 소방노조를 만나 세 번째 고개를 숙이며 수습에 나섰지만, 민심 이반을 우려하는 당 지도부는 징계 안건을 공식 논의에 올리며 갈림길에 섰다.
지도부 내부에선 제복 공직자와 민심에 상처를 준 발언에 대해 엄중한 경고나 윤리심판원 회부 등 납득할 만한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강경론과 지자체 재정 문제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어휘의 부적절성에 불과하다는 옹호론이 팽팽하게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