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 씨름하던 일상에서 자신을 돌보기 위해 잡은 붓이 이제 달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춘다. 차고 기우는 달에 감정의 변화와 관계의 흔적, 켜켜이 쌓인 기억을 담아온 정숙경 작가가 두 번째 개인전을 연다.
정 작가는 오는 26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태조산길 리각미술관에서 ‘우연에서 필연으로—HOLIC, Again’을 개최한다. 2023년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연 첫 국내 개인전 이후 3년 만이다.
이번 전시의 중심 소재는 달이다. 작가는 달의 차고 기우는 모습을 인간 내면의 감정과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에 겹쳐 놓는다. 같은 달도 바라보는 날의 마음과 함께한 사람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듯, 화면 속 달은 저마다의 시간을 되짚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전시 안내문에 담긴 작품에는 짙푸른 밤하늘과 둥근 달, 붉고 노란 색면, 사람의 형상과 여러 눈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색이 포개지고 형상이 어우러진 화면은 한 가지 감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과 기억의 복잡한 결을 보여준다. 달을 매개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던 시선은 타인과의 관계,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 넓어진다.
이러한 작업의 출발점에는 작가 자신의 치유 경험이 있다. 세무회계학을 전공한 그는 남편과 함께 철골 골조 건설 분야 제조업체를 경영하며 숫자를 다루는 일에 매달렸다. 그 과정에서 겪은 심리적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2013년 무렵 그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지탱하는 시간이었던 그림이 점차 삶을 바라보는 언어가 됐다. 필리핀 마닐라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부스 개인전을 열었고, 국내외 교류전과 공모전에 참여하며 작업을 이어왔다.
배움도 놓지 않았다. 지난 8월에는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회화 전공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번 작가노트에는 달의 변화와 인간 경험의 상징적 연관성을 문학·예술·심리·철학의 관점에서 살피려는 탐구가 담겼다. 일정하게 흐르는 시계의 시간 속에서 놓치기 쉬운 감정과 기억을 그림으로 되살리려는 시도다.
첫 개인전 당시 그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두고 “그 어떤 숫자들도 나를 괴롭힐 수 없는 철저한 또다른 나의 세계”라고 표현했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그 세계의 문을 열고 관람객이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마주하도록 이끈다.
정 작가는 이번 개인전 인사말에서 “이 여정을 통해 나 자신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연결과 공명을 다시 발견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