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공방을 시작한 지 올해로 7년이 넘었지만, 매달 매일 제 작품이 좋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에 만든 안경이 가장 최고의 작품입니다. 그렇게 하나씩 채워나가는 겁니다.”
강원도 원주시 중앙시장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그레이씨 안경공방. 서명규 공방장은 안경을 만드는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더 나은 안경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이다. 하지만 장인의 길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매년 12월 마지막 날이 되면 이 일을 그만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합니다. 힘들거든요. 최근 몇 년 동안은 12월 마지막 날을 꼬박 새우며 새해 첫날까지 공방에서 작업했어요. 고민하는 시간이지만, 또 힘을 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공방을 운영하면서 가장 크게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제작과 수리·복원 작업을 혼자 도맡다 보니 공방을 알릴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그럼에도 서 공방장은 자신이 가진 기술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안경 제작과 복원에 대한 확고한 자부심이 그를 다시 작업대로 향하게 한다. 자나 깨나 안경 생각뿐이다.
서 공방장이 안경사 일을 시작한 것은 2003년. 스무 살 무렵부터 안경을 다루기 시작해 지금은 40대 중반,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안경사로 일하면서도 그의 관심은 일반적인 안경 판매에만 머물지 않았다. 특히 1920~1950년대 빈티지 안경에 매료돼 관련 제품을 모으는 데 빠져들었다. 오래된 안경의 형태와 소재, 세월이 남긴 흔적을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길을 고민했다.
결국 그는 직접 안경을 만들고 고치는 공방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웨어 수리·복원과 수제 안경 제작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꿈이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막막했다. 어떤 공구가 필요한지, 소규모 작업에 적합한 기계와 장비는 무엇인지조차 쉽게 알 수 없었다.
그는 서울의 한 공방에서 안경 제조 기술을 배웠고, 대구 안경산업단지를 찾아다니며 공구와 장비에 관해 물었다. 그러나 먼저 걸어간 길이 드문 만큼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 갑작스럽게 나빠진 시력과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까지 겹쳤다. 몸이 힘든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씩 방법을 찾아 나갔다. 그렇게 준비한 공방은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 공방장이 만드는 수제 안경은 단순히 안경테의 모양을 정하고 재료를 잘라내는 작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재를 이해하는 일부터 세밀한 가공과 조립, 마감까지 여러 기술이 필요하다.
“수제 안경 제작은 물론 수리와 복원에도 엄청난 기술이 요구됩니다. 아이웨어 피팅부터 메탈 소재학, 금속 용접, 도금과 도색까지 공부해야 하지요. 지금은 은 장식을 안경테에 넣는 주얼리 가공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모든 아이웨어 수리 복원도 가능하지만 특히 빈티지 안경 수리 복원에서는 제가 최고입니다”
공방 운영과 함께 배움도 계속된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다양한 소재를 다뤄야 하는 일은 고되지만, 서 공방장은 그 과정에서 고객과 특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12~15시간가량을 오롯이 쏟아 부어야 수제 안경 하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안경을 만들면서 고객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요. 단순히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를 넘어 끈끈한 무언가를 연결하는 과정이 공방에서 생겨납니다.”
수제 안경 제작은 고객이 공방을 직접 방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지 않는 것도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과 콘셉트를 정한 뒤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 시트를 고른다. 시트는 안경의 형태를 만드는 기본 재료다. 재료가 정해지면 톱으로 안경테의 윤곽을 만들고, 안경다리에 와이어 코어를 심는 작업(템플 슈팅)을 진행한다. 이후 다리를 재단하고 샌딩(사포질)으로 표면을 다듬는다. 광택을 내는 폴리싱과 안경테의 형태를 조정하는 밴딩, 다리 부분의 각인 작업이 이어진다. 안경테와 다리를 연결하는 경첩을 달고 세공과 마감을 거친 뒤에는 밴딩과 피팅을 반복하며 착용감을 조정한다. 안경사이기도 한 서 공방장은 렌즈까지 직접 마무리한다.
“대략적인 과정만 설명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잡합니다. 마지막까지 고객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다하는 것이지요.”
그가 안경을 대하는 태도는 제작뿐 아니라 수리와 복원에서도 드러난다. 오래된 안경을 공방에 맡기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젊은 시절부터 써온 안경을 그대로 고쳐달라는 이도 있고, 익숙한 안경 하나만을 고집해 같은 형태의 제품을 여러 개 만들어 달라는 이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낡고 평범한 안경일지라도 주인에게는 쉽게 다른 것으로 바꿀 수없는 물건인 셈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기보다는 고객 한 분 한 분, 모두를 기억합니다. 수제 안경 하나하나에는 그분들에 대한 인상이 담겨 있어요. 대충 하는 게 없지요. 수리와 복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안경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습니다.”
아들의 안경을 급히 고쳐달라는 의뢰를 받고 밤을 새워 작업한 적이 있었다. 안경을 고친 뒤에야 그는 의뢰인이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러진 안경을 고쳐 장례를 치르고 싶었던 것이다.
고객들의 반응은 그가 작업을 이어가는 힘이 된다. 온라인에 남겨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인생 안경이에요’라는 댓글을 볼 때 보람을 느낍니다”라는 서 공방장의 말에는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고객을 향한 애정이 함께 담겨 있다.
서 공방장이 바라는 미래는 거창하지 않다. 자신이 가진 기술을 꾸준히 갈고닦으며 공방을 이어가는 것이다. 언젠가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안경만 생각한 사람’이라고 기억해 준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결국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해마다 12월의 마지막 날이면 그만둘까 고민하면서도 다시 작업대 앞에 서는 사람. 이번 주에 만든 안경이 자신의 최고 작품이라고 말하면서도 다음 작품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 원주 중앙시장 한편의 작은 공방에서 서명규 공방장은 오늘도 안경을 만들고 고친다. 그가 한 땀 한 땀 만든 안경에는 또 누군가의 시간과 기억이 담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