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이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공개매수와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결의한 이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졌다. 경영권 다툼이 치열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쪽 힘을 빼려고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한 것이다. 영풍 측이 항소키로 하면서 그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난달 열린 임시주총에 이어 1심 소송까지 유리한 결과를 얻은 최 회장 측이 경영권 분쟁의 승기를 잡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재판장 김석범)는 22일 영풍이 최 회장 등 고려아연 이사들을 상대로 약 8370억원 규모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2024년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영풍은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함께 고려아연 주식을 주당 83만원에 공개매수하려고 절차를 개시했다. 이에 고려아연은 이사회를 열고 주당 89만원에 자사 주식을 공개매수하기로 결의했다. 영풍은 공개매수가 힘을 잃자 고려아연의 주식 매수가 최 회장 등 경영진의 지위 보전을 위한 것에 불과하고 합리성이 결여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려아연 이사들이 ‘선관주의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와 ‘충실의무’를 위반했다며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가 이사에 대한 책임 추궁을 게을리할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고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이다. 고려아연 이사회가 1주당 56만원 정도였던 고려아연 주식을 주당 89만원에 사들이면서 회사에 그만큼의 손해를 입혔다는 취지로 소송을 낸 것이다.
재판부는 “이사는 경영에 관한 판단을 할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며 고려아연 이사들의 자기주식 매수 판단을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영풍의 공개매수를 회사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한 고려아연 이사들이 외부 법률자문과 법원의 가처분신청사건 결정 등을 검토한 뒤 자금조달 방안을 전제로 결정을 내렸다며 그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다고 봤다.
최 회장 측은 한숨을 돌리는 동시에 경영권 분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열린 임시주총에서 최 회장 측은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감사위원 선출에 성공했다. 이사회도 12대7로 유리한 구도를 점했다. 최 회장 측이 투자자들의 지지를 확인하고 1심 법원까지 손을 들어주면서 내년 3월 예정된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서도 경영권 방어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영풍·MBK 측은 1심 판결 후 “개인의 자리보전을 위해 고려아연을 사금고화하고 막대한 채무를 떠넘긴 위법적 경영행위가 ‘이사의 재량’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며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고려아연은 “MBK와 영풍은 ‘적대적 M&A’를 위해 당사의 정상적 경영 활동을 방해하며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묻지마 식’ 소송 남발을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