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생명’이란 말이 있다. 정치와 생명을 띄어 쓰지 않고 한 단어처럼 붙인다.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일, 정치인으로서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 등을 의미한다. 거물급 정치인이 선거에서 무명의 신인에게 패해 낙선의 고배를 마시거나 비리 혐의로 수사 기관에 구속됐을 때 “정치생명이 끝났다”고 표현하곤 한다. 영어로는 ‘데드덕’(dead duck)이 그에 해당한다. 임기 말의 권력 누수를 뜻하는 ‘레임덕’(lame duck)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을 일컫는다.
정치인에게만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흔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무인도에 갇히지 않는 한 사람은 혼자서 존재할 수 없고,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회적 생명’을 지닌다. 굳이 다른 단어를 쓰자면 ‘평판’이나 ‘명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회 공동체의 규범인 법을 어기고 범죄를 저지르면 평판 훼손과 명예 실추가 뒤따른다. 최악의 경우 이른바 ‘사회적 매장(埋葬)’을 당한다.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 그대로 사회적 생명이 다한 상태다.
얼마 전 프랑스 정부와 의회가 협력해 불치병 환자의 조력(助力) 사망권을 인정하는 법률, 일명 ‘조력사법’을 만들었다. 조력사 제도에 강력히 반대해 온 바티칸이 발끈했다. 최근 프랑스를 방문한 레오 14세 교황은 의료진과 만난 자리에서 “여러분의 임무는 고통받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지, 그 사람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교했다. 혹자는 교황에게 “말기 암 환자들의 괴로움이나 그 가족의 고충을 아느냐”고 따져 묻고 싶을 것이다. 하나 의학과 의사의 소명은 아픈 환자를 어디까지나 ‘살리는’ 것이란 점만은 명백하다.
검사가 범죄 피의자를 재판에 넘겨 법관의 심판을 구하는 행위를 ‘기소’(起訴)라고 한다. 이는 범죄자한테 죗값을 묻고 피해자에겐 구제를 제공함으로써 공익을 실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로 불리는 이유다. 공석인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이정현 공소청 차장검사가 2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절의 비화를 소개했다. 윤 총장의 참모로 근무하며 그로부터 “사건이 애매하고 반성·자백하지 않는 사건은 기소해서 3년씩, 5년씩 재판받게 하고 물적·심리적·경제적으로 고통받게 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기가 찰 노릇이다. 누구든 형사 사건으로 기소되면 명예를 잃고 심하면 사회적 매장을 당한다. 그런데 ‘애매하면 기소해 고통받게 만들어야 한다’니, 법률 지식을 악용한 ‘인격 살인’인 셈이다. 법학과 검사의 소명에서 크게 벗어난 일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