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버스 정류장. 17세 축구 선수 둘이 주머니를 뒤졌다. 버스비가 모자랐다.
둘은 이날 20세 이하 대표팀에 처음 뽑혀 소집 장소로 가던 길이었다. 집합 시간을 착각한 탓에 동료들은 이미 떠난 뒤였다. 지하철을 타고 쫓아가느라 가진 돈을 다 썼다.
한 명이 먼저 버스에 올라 기사에게 말했다.
“제 얼굴을 기억해 두세요. 언젠가 프로 축구 선수가 될 거고, 아르헨티나를 위해 뛸 거니까요. 스타가 될 거고요.”
기사는 둘을 태워 줬다. 버스에서 내려 훈련장까지 남은 6㎞를 뛰었다. 그날 함께 버스에 올랐던 안토니오 모하메드가 영국 BBC에 털어놓은 일화다.
기사에게 얼굴을 기억해 두라던 그는 약속을 지켰다. 아르헨티나 대표로 106경기를 뛰었고 은퇴 뒤엔 스타 감독이 됐다. 해외 매체가 추산한 연봉은 2700만 달러(약 370억원)다.
그가 이끄는 팀에서 지금 이강인이 뛰고 있다.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디에고 시메오네(56) 감독이다.
“심판이 덫에 걸렸다”
선수 시메오네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 잉글랜드전이 그랬다. 시메오네의 태클에 넘어진 데이비드 베컴이 누운 채로 그의 다리를 툭 걷어찼다. 시메오네는 크게 쓰러졌고 주심은 곧바로 베컴에게 레드카드를 꺼냈다. 아르헨티나는 수적 열세에 몰린 잉글랜드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8강에 올랐다. 베컴은 한동안 국민 역적이 됐다.
시메오네는 그날을 이렇게 되돌아봤다.
“심판이 덫에 걸렸다고 해 두자. 내가 넘어지면서 옐로카드가 레드카드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저주받은 팀’의 감독이 되다
아틀레티코는 오랫동안 같은 도시의 레알 마드리드에 가려진 팀이었다. 1974년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종료 직전 동점골을 내준 뒤 재경기에서 져 우승을 놓쳤다. 그 뒤로 붙은 별명이 ‘엘 푸파스(El Pupas)’, 저주받은 팀이다.
시메오네가 선수 시절 몸담았던 팀에 감독으로 돌아온 2011년 12월, 팀은 강등권과 승점 4점 차이까지 밀려 있었다.
올백으로 넘긴 검은 머리에 검은 정장. 그는 벤치에 앉지 않고 터치라인을 오가며 소리쳤다. 촘촘하게 공간을 닫고 버티다 한 번의 틈을 물어뜯는 축구. 사냥에 가까웠다.
2013년 5월 국왕컵 결승에서 레알을 연장 끝에 꺾었다. 14년 만의 레알전 승리였다. 2013~2014시즌에는 레알과 바르셀로나의 양강 구도를 깨고 18년 만에 리그 정상에 올랐다. 2020~2021시즌에도 한 번 더 우승컵을 들었다.
유럽 정상 문턱에서는 두 번 모두 레알에 막혔다. 첫 결승은 종료 직전 동점골을 내준 뒤 연장에서 무너졌고 두 번째 결승은 승부차기 끝에 졌다.
시메오네는 아틀레티코를 유럽 챔피언으로 만들지 못한 것을 “실패”라고 했다.
아들도 예외는 아니다
시메오네는 15년째 같은 벤치를 지키고 있다. 기준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얼마나 뛰느냐다. 셋째 아들 줄리아노는 아틀레티코의 측면 공격수다. 감독의 아들이라 기회를 더 받는다는 시선이 따라붙었다. 줄리아노가 아틀레티코에서 첫 골을 넣은 날, 시메오네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선수를 선수로 본다. 많이 뛰는 선수가 경기에 나가고, 덜 뛰는 선수는 덜 나간다.”
올여름 합류한 이강인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됐다. PSG를 떠나 등번호 7번을 받은 이강인은 라리가 개막전에서 교체 투입 13분 만에 결승골을 넣었다. 강렬한 데뷔에도 특별 대우는 없었다. 선발로 나서도 번번이 후반 중반이면 벤치로 불려 들어갔다. 이유를 묻는 현지 기자에게 시메오네는 말했다.
“가장 좋은 것은 경기 전체를 소화하면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풀타임은 스스로 따내라는 얘기다.
버스비도 없던 날, 기사에게 자기 얼굴을 기억해 두라던 17세 축구 선수. 이제 그 얼굴을 모르는 축구 팬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