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정부 말기인 1991년 8월 당시 여당인 민자당 김영삼(YS) 대표가 암 투병 중이던 김동영(1936∼1991) 전 정무장관을 문병했다. 김 전 장관은 YS의 손을 꼭 쥔 채 “대통령 되시는 것을 눈으로 꼭 봐야 하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1960년대 YS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래 평생 그의 곁을 지킨 동지의 불운 앞에 YS도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4선 의원을 지낸 김 전 장관 장례는 국회장(葬)으로 치러졌다. YS는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읽던 중 눈물을 흘렸다. 훗날 대통령이 되고 유족과 만난 자리에서 YS는 “일생을 바친 민주화가 꽃피는 것을 보지 못하고 먼저 간 것이 안타깝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YS를 따른 정치인들은 그의 집이 있던 동네 이름을 따 ‘상도동계’로 불렸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와 더불어 1970∼1980년대 한국 야당의 양대 기둥으로 불릴 만했다. 상도동계 숱한 인물들 중에서도 ‘좌(左)동영 우(右)형우’가 단연 돋보였다. YS의 왼팔이 김동영이라면 오른팔은 최형우란 뜻이다. 나이는 최형우가 한 살 더 많지만 두 사람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둘 다 경남 출신이고 동국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1960년대 YS의 이른바 ‘가신’(家臣)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1991년 7월 암 악화로 더는 공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된 김동영에게서 정무장관 자리를 넘겨 받은 이도 최형우였다.
1992년 대선에서 YS 당선의 ‘1등 공신’ 역할을 한 최형우는 문민정부 시절 민자당 사무총장,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장관 등 요직을 역임했다. 1997년 대선이 다가오며 민자당은 민주계(옛 민주당)와 민정계(옛 민정당) 간 계파 싸움이 치열해졌다. 여기에 YS가 영입한 이회창, 이홍구, 이수성 3인의 전직 국무총리도 야심을 드러냈다. 너도 나도 대권 잠룡을 자처해 ‘9룡(龍)’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그런데 한보 비자금 사태와 YS 차남 김현철 연루 의혹 등으로 민주계는 뒤숭숭했다. 1997년 3월 민주계 중진 의원들과 정권 재창출을 논의하던 최형우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후 민자당은 ‘굴러온 돌’ 이회창의 독주 체제로 급속히 개편된다.
권력의 정점에서 건강을 잃고 무려 30년 가까이 투병해 온 최형우가 지난 24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2015년 11월 YS 서거 후 거의 11년 만이다. 호사가들은 “청와대 입성 전에는 김동영을 떠나 보내고, 대통령 임기 말에는 최형우까지 잃은 것이 정치인 YS의 최대 비운”이라고 말한다. 1993년 온 국민의 기대 속에 출범한 문민정부가 초라하게 막을 내리는 단초가 됐다는 뜻이다. 생존해 있는 상도동계 좌장 김덕룡, 동교동계 좌장 권노갑이 나란히 고인의 장례위원장을 맡고 여기에 민주당 김민석 대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공동 위원장으로 참여한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비록 고인은 살아서 정치적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이 극심한 분열의 시대에 ‘통합’의 메시지를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