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이 북·미대화 재개로 이어질 지 주목된다. 다음 달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중국이 북·미 정상 간 소통을 촉진하는 역할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이번 김 위원장 방중에서는 북·미회담을 염두에 둔 사전 조율이 이뤄졌다고 판단할 만한 뚜렷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은 만큼 실제 대화 재개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조선중앙통신은 25일 김 위원장이 지난 24일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76돌’을 즈음해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방문해 항미원조기념관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중국군은 6·25전쟁에서 첫 승리를 거둔 10월 25일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돕는다) 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북측에서는 조용원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최선희 외무상, 리일환·김성남 비서, 김덕훈 제1부총리, 김여정 총무부장, 김재룡 제1부부장을 비롯한 당정 주요 간부들과 리룡남 주중북한대사가 동행했다. 중국 측에서는 권력 서열 4위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 영접했다. 왕이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과 류하이싱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마자오쑤 상무부부장 등 중앙 간부들과 쉬쿤린 랴오닝성위원회 서기 등 지방 간부들, 왕야쥔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함께했다. 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왕 주석이 마련한 연회에 참석하고, 단둥시 버스공장을 시찰한 뒤 중국 측의 배웅을 받으며 신압록강대교를 통해 다시 귀국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다음 달 APEC 정상회의를 앞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최고지도자의 의중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북·중 정치체제에서 북한 지도자의 방중은 양국 간 현안을 조율하고 협력을 요청하는 성격이 강하다. 전례도 있다. 김 위원장은 두 차례 북미대화 과정에서 2018년 3·5·6월, 2019년 1월까지 네 차례 방중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강하게 압박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과의 연대를 통해 대미 협상력을 높이고,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등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행보로 해석됐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시 주석의 최측근 책사이자 지난 7월에 평양에 갔던 왕 주석이 영접하고, 방중에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등 양국 외교 당국자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북미대화 문제 논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중국이 북·미대화 과정에서 ‘건설적 역할’을 할지도 관심사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 관심을 보여온 만큼, 중국이 양측 간 소통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북·미 간 긴장이 고조되면 한·미 연합훈련과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는 등 중국이 부담으로 여기는 역내 안보 환경이 형성될 수 있다. 중국은 북·미 간 긴장 완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요 행위자임을 미국에 각인해 미·중 간 다른 현안에서도 외교적 협상 여지를 넓힐 수 있다. 북·중관계 전문가 박종철 국립경상대 교수는 “중국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소통을 돕고, 정상 간 짧은 만남이라도 성사시켜 한반도 문제에서 외교적 역할을 부각하려 할 유인이 있다”며 “지난 6월 시 주석의 방북은 미·중이 향후 한반도 정세 관리 방식을 다시 모색하려는 큰 그림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 방중을 북·미대화 재기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해석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과 별도 회담을 갖지 않았다는 점, 양측이 공개적으로 내세운 주요 의제 역시 중국인민지원군 추모와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계기로 한 인적 왕래 및 경제무역 협력 확대에 맞춰졌다는 점에서다. 양 석좌교수는 “최 외무상이 러시아를, 왕 부장이 미국을 방문하는지 등 향후 움직임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방중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염두에 둘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