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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방해꾼들’이 지탱하던 미국

개혁 장애물 묘사됐던 공무원
보이지 않게 국가 시스템 유지
트럼프 대규모 구조조정에도
연방지출 전년보다 되레 늘어

미국에서 이달 초 출간된 마이클 루이스의 신작 ‘방해꾼들’(Blockers)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논픽션 부문 2위에 오르며 흥행하고 있다. 이 책은 2025년 초 일론 머스크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자문역으로 출범시킨 정부효율부(DOGE)에 맞선 공무원들의 이야기다. 정식 연방 부처가 아닌 정부효율부는 연방정부 지출 2조달러 삭감을 목표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당시 예산 삭감으로 조직이 사라지면서 직업을 잃은 사람들 얘기가 적잖게 들렸고, 해고된 국세청 변호사가 워싱턴 시내에서 핫도그를 파는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공무원 대량 해고 사태’로만 생각했던 이 사건과 관련해 이 책은 무차별 예산 삭감과 해고가 미국에서 무엇을 사라지게 했는지에 주목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몇 명의 공무원이 등장한다. 불법체류 이민자 추방에 납세자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이용하려는 시도를 막던 국세청 직원,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규칙을 지키도록 감독하던 인물, 산불이 주택가로 번지는 것을 막는 방법을 연구하던 전문가, 낭포성 섬유증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법 개발에 기여한 연구자, 불법 침입을 막던 연방정부 보안요원 등이다. 이들은 정부효율부 입장에서는 ‘방해꾼들’이었고, 상당수가 부당한 요구에 저항하다 사임하거나 해고됐다. 책의 상당 부분은 이들이 조직을 떠나기 전 수행했던 업무의 가치를 보여주는 데 할애된다.

홍주형 워싱턴 특파원
홍주형 워싱턴 특파원

공무원이 하는 일이 영웅시되는 일은 드물다. 대개 비효율적이라고 비판받거나 질책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일이 곧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민주주의 국가의 ‘시스템’을 떠받치는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은 깨우쳐 주고 있다. 공무원 개개인의 얘기로 보여주는 시스템의 문제는 독자가 이해하기 훨씬 쉬운 ‘인간의 이야기’가 된다. 작가는 출간에 맞춘 CBS 인터뷰에서 정부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며 그들이 정부가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에서 연방정부의 비대화, 관료주의, 워싱턴의 기득권에 대한 비판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오랫동안 반복돼 온 정치적 담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유물이 아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부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자체라고 선언했고,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앨 고어 부통령 주도로 ‘정부 재창조’ 구상을 내놨다. 정부의 비효율성과 관료조직에 대한 비판은 이후 트럼프 대통령 1기에서도 ‘딥스테이트’ 비판과 2기의 정부효율부 출범처럼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루이스는 그동안 개혁의 장애물로 묘사됐던 공무원들을 국가를 지탱하는 주인공으로 바꾼 셈이다. 이 책이 목표로 하는 것이 미국 공무원 조직 전반에 대한 신뢰 회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간 잊고 있던 미국의 시스템이 사실상 어떻게 유지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인도 출신의 미국 기술기업 창업자이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사힐 라빙기아는 정부효율부에 자발적으로 합류했다가 “사실 꽤 괜찮다. 정부는 제대로 작동한다. 솔직히 예상했던 것만큼 비효율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언론 인터뷰 이후 정부효율부에서 해고됐다. 라빙기아의 말은 정부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정부 내부에서도 이미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 개혁은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미국 행정부는 효율적이 되었을까. 재무부 발표에 따르면 2026 회계연도 연방정부 지출은 약 7조5000억달러, 수입은 약 5조4000억달러였다. 지출은 전년보다 6% 증가했다. 대규모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의 재정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다.

정부효율부의 사례는 정부 내부의 업무와 기능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외부의 효율성 논리만으로 개혁을 추진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득권을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개혁하더라도 시스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제대로 작동할 때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가치는 그들이 떠난 뒤에야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