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불을 40여년간 탐구해온 도예가 이종능이 지구를 넘어 우주에 집을 짓는 상상력으로 새로운 예술적 도전에 나선다. 흙의 입자와 균열, 불이 남긴 흔적을 독자적인 조형 언어인 ‘토흔(土痕)’으로 발전시켜온 그가 이번에는 화성의 미래 도시를 꿈꾼다.
이종능은 지난 23일부터 11월 24일까지 서울 Space776 Seoul에서 개인전 ‘가장 단단한 흙’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흙이라는 물질을 오랫동안 탐구해온 작가의 조형 세계를 돌아보는 동시에, 지구의 흙에서 출발한 상상력이 미래의 우주 공간과 건축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토흔은 흙의 고유한 색과 입자, 건조 과정에서 생기는 균열과 수축, 소성 과정에서 불이 남긴 흔적을 작품의 언어로 삼는 작업이다. 작가는 흙을 완벽하게 통제하기보다 불을 통과하며 나타나는 우연한 변화와 비정형성까지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오랜 실험과 실패를 거듭하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왔다는 점에서 토흔은 재료의 물성과 시간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흙을 향한 탐구가 우주와 미래 문명을 향한 상상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몽골의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와 끝없이 펼쳐진 광야, 거침없이 달리는 말들의 생명력은 작가에게 태고의 자연과 인류의 미래를 함께 생각하게 하는 영감이 됐다.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광활한 풍경에서 출발한 상상은 이제 지구 밖에서 인류가 살아갈 공간으로 뻗어간다.
그 구상을 집약한 것이 ‘화성에서 온 네옴시티’로 이어지는 우주 시리즈다. 화성에 들어설 미래 도시와 인류의 이주 공간을 상상하고, 그곳에 흙으로 자신의 집을 짓겠다는 발상이다. 그릇과 조형물에 흙과 불이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담아왔다면, 이제는 도자와 미술, 건축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래의 삶이 펼쳐질 공간을 모색하는 셈이다.
전시 제목 ‘가장 단단한 흙’은 연약한 흙이 불의 시간을 통과해 단단한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을 함축한다. 1980년대부터 한국 도자의 재료적 특성을 연구해온 이종능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한국 대표 작가로 선정됐으며, 2007년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특별전 ‘생성과 소멸’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흙의 본질을 추적해온 40여 년의 시간과 미래를 향한 상상력이 만나는 자리다. 지구의 흙에서 출발한 작가의 시선은 이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향한다. 흙을 빚는 일에서 우주에 삶의 터전을 만드는 일로, 이종능의 토흔은 과거의 흔적을 기록하는 동시에 미래의 가능성을 빚어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