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방문했다. 집권 후 6번째 방중이다. 이전 다섯 차례 방중과 비교했을 때 여러모로 대비되는 측면이 있다. ‘당일치기’ 초단기 방문이다. 또 중국 최고지도자인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지 않았다. 중국을 찾았지만,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단둥은 대표적인 북·중 접경지 국경 도시다. 6·25 전쟁 당시 유엔군 폭격으로 무너진 제1압록강 철교가 끊어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북·중 관계의 상징적인 도시다.
◆ 이례적 형식, 분명한 메시지… 고비마다 판을 뒤집어온 김정은
국경을 맞댄 이웃 국가라도 최고지도자의 방문엔 일정한 의전과 외교의 형식이 있다. 방문국 최고지도자를 만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이례적이다. 그렇지만 단둥 방문을 통해 발신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흔치 않는, 정상회담이 없었던 ‘당일치기’ 방문에서 행간의 의미를 읽어야 그의 방문 의도를 비교적 명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과거 다섯 차례 중국 방문과 비교해보고, △북·중 경제협력 △북·미 대화 사전 탐색이라는 두 가지 쟁점의 측면에서 이번 방중이 가진 정치적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집권 후 고비마다 예상 밖 착수(着手)로 기울어졌던 추를 팽팽하게 돌려 놓곤 했다. 2016년 4차 핵실험으로 한국으로 기울어졌던 중국을 북한 쪽으로 끌어 당겼고, 2024년 북·러 신조약 체결·우크라이나 파병으로 북·중·러 대 한·미·일 신냉전 구도 속에서의 북한 위상을 공고히 하는 성과를 거뒀다.
◆ 다섯 차례 방중의 공식… 시진핑을 만나야 미국과 마주 앉았다
2018년 3월 1차 방중은 김 위원장의 집권 후 첫 해외 방문이다. 4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시 주석을 만난 첫 공식 외교 행보다. 2개월 뒤인 5월엔 전용기를 타고 중국 다롄에서 시 주석을 다시 만났다. 당시 중국 내에서는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북·중 정상회담을 한 차례도 하지 않은 채 한국과 미국과 정상회담을 추진하자, ‘차이나 패싱’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었던 때다.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베이징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의 대면 만남의 경험을 중국 주요 인사들에게 소개했을 정도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남북, 북·미 회담을 앞두고 시 주석을 만나자,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동시에 대미 협상 레버리지를 다졌다. 2019년 1월 4차 방중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중국 뒷배를 과시하는 행보로 분석됐다.
김 위원장의 5차 방중은 북·중·러 연대를 한껏 과시하면서 글로벌 반미연대를 상징하는 주요한 국가로 북한을 자리매김하게 했다. 2025년 9월 중국 전승절 80주년을 계기로 김 위원장은 중국을 방문해 톈안먼 광장 열병식에 참석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 주석과 연쇄 회동했다.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를 굳히는 동시에 북·러 신조약과 우크라이나 파병으로 다소 소원해졌던 중국과의 관계를 단번에 격상시키는 효과도 거뒀다.
◆항미원조기념관 헌화·신압록강대교 통과… 혈맹·교역 동시 소환
이번 단둥 방문은 과거 5차례 방중과 비교할 때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뚜렷하게 대비된다. 시 주석을 만나지 않았지만, 중국 공산당 권력 서열 4위인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 김 위원장의 카운터 파트 역할을 했다. 수도 베이징으로 가지 않고 국경 도시인 단둥만을 방문했다. 동선은 비교적 단순했다. 중국군의 6·25 전쟁 참전 76주년(10월 25일)을 하루 앞두고 항미원조기념관을 찾아 헌화했다. 북·중 '혈맹'의 역사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3대 책사로 불리는 사회주의 이론가 왕후닝이 김 위원장을 영접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완공 12년 만에 이달 공식 개통한 신압록강대교를 직접 건너와 현지 공장을 참관했다. 장기간 가로막혔던 북·중 국경 교역 정상화와 경제 협력 강화를 상징하는 행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 APEC 앞둔 사전 포석… 트럼프 담판에 대비한 '중국 뒷배' 재확인
11월 중국 선전에서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이번 단둥 방문의 관련성이 관심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김 위원장의 단둥 방문을 향후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중국 측과의 사전 조율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북·미 대화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북·미 대화를 겨냥한 사전 조율이라는 해석은 다소 현실에 맞지 않는다.
다만,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미국과의 만남을 앞두고 항상 중국을 찾았다. 이번 단둥 방문도 11월 APEC 개최를 앞두고 성사됐다. 따라서 대미 협상을 대비한 중국 뒷배를 재확인하는 포석 차원의 방문으로 보인다. 전통적 혈맹 관계를 과시하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원했던 양국간 국경 교역도 정상화하는 동시에 있을 수도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차원에서다. 북·중 관계의 확고한 안정성은 대미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