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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컵’ 안 줘 음주운전 유죄 뒤집혔다… 물 안 받겠다고 버티면? [이슈+]

경찰, 음주측정 전 입 헹굴 음용수 200㎖ 제공해야
베테랑 운전자도 ‘입헹굼물’ 제공 경찰 의무인 줄 몰라
운전자가 물 안 받고, 입 안 헹궈도 측정거부와는 별개

음주측정 전 경찰이 운전자에게 입을 헹굴 물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측정 결과를 원칙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경찰은 물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 단속 절차이며, 운전자가 음주측정 자체를 거부할 경우 별도의 지침에 따라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인공지능)를 사용하여 제작한 사진. Chat GPT 생성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인공지능)를 사용하여 제작한 사진. Chat GPT 생성

◆음주측정 0.081% 나왔지만 판결 뒤집혔다

 

2023년 12월 세종시의 한 도로. 시동이 켜진 차량이 도로 한가운데 멈춰 있었고, 운전석에서는 40대 남성 김모씨가 잠들어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김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지구대로 데려갔다.

 

경찰관 한 명이 종이컵에 물을 담아 김씨에게 다가갔지만, 잠든 김씨를 깨워 입을 헹구도록 권하지 않고 돌아섰다. 이후 경찰은 김씨의 입 근처에 음주측정기를 가져다 대며 측정을 시도했다. 김씨가 일어나 측정기에 숨을 불어넣자 혈중알코올농도는 0.081%로 나타났다.

 

김씨에게는 과거 음주운전 처벌 전력도 있었다. 1·2심은 음주운전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1일 김씨의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경찰이 법령에 명시된 물 제공 절차를 지키지 않았으므로 측정 결과를 원칙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김씨가 술을 마친 뒤 약 50분, 운전을 마친 뒤 약 25분이 지난 상태였다는 점도 쟁점이 됐다. 하급심은 음주 후 일정 시간이 지난 만큼 입안에 남은 알코올이 측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잔류 알코올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트림이나 구토 등으로 알코올이 다시 입안에 남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김씨에게 물을 제공하거나 재측정할 기회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4년 12월3일 오후 8시50분쯤 서울 관악구 원당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서울 관악경찰서 소속 한 경찰관이 운전자를 운전석에서 데리고 나온 뒤 음주 측정을 하는 모습. 사진 속 운전자는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뉴시스
지난 2024년 12월3일 오후 8시50분쯤 서울 관악구 원당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서울 관악경찰서 소속 한 경찰관이 운전자를 운전석에서 데리고 나온 뒤 음주 측정을 하는 모습. 사진 속 운전자는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뉴시스

◆30년 운전했는데도…‘물 한 컵’의 법적 의미 몰라

 

수십 년간 운전대를 잡아온 화물차 기사들도 경찰이 음주측정 전에 물을 건네는 것이 필수적인 절차라는 것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화물차 운전 경력 30년인 A(56)씨는 “한 15분 정도 기다려준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사이에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도 동료들에게 들었다”며 “경찰이 물을 제공하지 않고 얻은 측정 결과를 재판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말했다.

 

19년 차 화물차 기사 B(45)씨는 실제 음주단속에서 경찰에게 물을 받아본 경험이 있었다. 그는 “입을 헹구라고 한 것보다도 전 물을 마시라고 줬었다”며 “이게 의무여서 주는 줄은 전혀 몰랐고 그냥 경찰의 배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음주 단속 중인 경찰 모습. 연합뉴스
음주 단속 중인 경찰 모습. 연합뉴스

◆물 안 받겠다고 버티면?…경찰 “측정 거부는 별개”

 

그렇다면 경찰이 물을 건넸는데도 운전자가 입을 헹구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떨까.

 

경찰청의 2025년 ‘교통단속 처리지침’ 제30조에는 입안의 잔류 알코올을 헹굴 수 있도록 음용수 200㎖를 제공하도록 규정돼 있다. 2023년 7월4일부터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도 물 제공 의무가 명시됐다. 입안에 남은 알코올이 호흡측정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마련된 절차다.

 

경찰청 교통안전계 관계자는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채 측정에 계속 불응하면 경찰은 5분 간격으로 3차례 이상 불이익을 고지한다. 최초 측정 요구부터 15분이 지나도 응하지 않으면 측정거부자로 처리할 수 있다. 운전자는 그동안 물을 마시거나 입을 헹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절차가 마련돼 있어 운전자가 음주측정을 무기한 지연할 수는 없다”며 “만취해 잠들었거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에도 입 헹굼을 권유하는 것이 기본 절차”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