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벽에 매달린 해바라기 샤워기가
구멍 촘촘 물방울 머금고 있다
햇빛과 바람만이 끼니의 전부이던 때
온통 그을려야 생이 여문다 믿었던 적 있다
품었던 씨앗들 모두 탈골해 버리고
꺾어진 목으로 바닥을 향한 해바라기
반 평짜리 부스에서 고개 떨군 채
욕실 벽 파고든 제 밑동을 쳐다본다
벽 속 숨겨진 저 물관 따라가면
눈물의 근원에 도달할 수 있을까
땡볕 속 그늘나무 곁을 에돌던 그 사람은
어디에 도착해 있을까
(중략)
햇볕과 바람만이 끼니의 전부이던 시절에는
결코 울지 않겠다고 버티던 그 사람의 눈물샘에
그렁그렁 물방울이 맺혀 있다
여러 개의 잔구멍으로 이루어진 샤워기 헤드는 씨앗이 빽빽이 박힌 꽃판을 연상케 한다. 그런 이유로 “해바라기 샤워기”라 불리는 샤워기가 내 집 욕실에도 걸려 있다. “꺾어진 목으로 바닥을 향한 해바라기”는 지금 “욕실 벽”에 박힌 제 밑동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그의 생각 같은 건 도무지 가늠할 수 없고…. 문득, 여기 작고 어두운 욕실에 발이 묶인 이 가느다란 존재가 한없이 낯설게 느껴진다.
시 속 화자는 지금 욕실 벽에 매달린 샤워기를 보며, 아니 구붓하게 휘어져 고개를 떨군 해바라기를 보며 과거 한때의 상처를 떠올린다. 어쩌면 가장 불우했던 시절, “햇빛과 바람만이 끼니의 전부”일 만큼 가난하고 고독했던 시절을. 가난과 고독 앞에 “결코 울지 않겠다고 버티던 그 사람”은 누구일까. ‘해바라기’이자 ‘샤워기’인 그는 다름 아닌 화자 자신이 아닐까. 한참이 지난 이제야 그렁그렁 묵은 눈물을 매단 채 거울 앞에 서 있는 사람.
박소란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