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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칼럼] ‘방어용 핵무기’는 없다

李 “실전 치르겠냐. 최후 무기” 논란
北은 ‘核 선제 사용’ 법으로 못 박아
군사학엔 없고, ‘면죄부’ 빌미 줄 뿐
한·미동맹 토대 위에 억지력 키워야

1938년 9월 말 독일 뮌헨에서 유럽의 운명을 좌우할 세기의 담판이 열렸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전쟁’ 운운하며 독일계가 많이 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지역을 요구했다. 히틀러는 “다른 영토적 야심은 없다”며 유럽을 달랬다. 1차대전의 악몽이 남아 있던 유럽은 또 다른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가 중재에 나섰다. 당사국인 체코는 철저히 배제된 채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양도한다는 ‘뮌헨 협정’이 체결됐다.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귀국해 관저 앞에서 히틀러의 친필 서명이 담긴 종이를 흔들며 외쳤다. “친애하는 여러분, 영국 총리로 우리 역사상 두 번째로 독일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나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peace for our time)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이제) 집에 가서 편안히 잠드십시오”라고 말이다.

김기동 논설실장
김기동 논설실장

유럽은 평화를 지켜냈다고 착각했고, 실상은 히틀러의 전쟁 욕구만 자극했다. 히틀러는 6개월 뒤 체코의 나머지 영토를 점령했고, 곧바로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체임벌린식 해법은 정치학에서 ‘유화정책’의 대표적 실패사례로 거론된다. 급기야 1990년 9월 체코 의회 연단에 선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는 “1938년 히틀러를 달래는 유화정책을 쓰는 바람에 체코의 독립을 잃게 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반성문을 썼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의 핵(核)을 두고 “핵무기로 실전을 치르겠느냐” “그건 최후의 방어 무기에 해당한다”고 했다. 아찔한 상황인식이 아닐 수 없다. 대북 유화책을 넘어 ‘대북 저자세’ 비판을 받는 작금의 상황과 체임벌린을 비교하면 기시감마저 든다. 물론 역대 정부에서도 이런 류(類)의 말이 없었던 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공언했다. 노무현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징후를 애써 외면하다 1차 핵실험 직후 “북한의 핵 주장에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고 둘러댔다. 당시는 핵개발 초기여서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남아 있을 때다. 지금은 180도 상황이 달라졌다.

더욱이 ‘방어용 핵무기’라는 개념은 군사학에서조차 찾을 수 없다. 핵이 전쟁을 억제하는 의미로 넓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핵무기 자체는 방어적 성격을 가질 수는 없다. 적이 쳐들어왔을 때 대응하는 재래식 무기와 달리 자국 땅에 핵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백번 양보해 북한 핵무기를 ‘방어용’으로 봐주더라도, 정작 당사자인 북한은 방어용이라고 한 적이 없다. 북한은 2022년 ‘핵무력정책법’을 채택하면서 핵무기의 선제사용까지 명시했다. 최근 핵 탑재가 가능한 방사포를 최전방에 속속 배치하고 있다. 여기에다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SLCM)과 전술핵 등 다양한 교전용 핵수단을 지속적으로 고도화시키고 있다.

이 시점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압록강대교를 통해 24일 중국 단둥을 ‘깜짝 방중’한 건 의미심장하다. 단둥은 북·중 교역의 70%가 이뤄지는 교역의 요충지다. 북·중 경제밀착으로 국제사회 감시망을 피해 ‘전략물자’가 대거 북한으로 밀반입되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무력화된다. 북한은 러시아 파병과 군사협력 등으로 막대한 자금까지 확보했다.

북핵 사태가 악화일로인데 우리는 ‘발등의 불’을 끄는 게 시급하다. 북·중·러 밀착이 가속하는데도 ‘지뢰도발’ 가해자인 북한은 사과는커녕 인신공격·망발 수준의 비난을 쏟아낸다. 설상가상으로 한·미동맹도 삐걱대고 있다. 재래식 무기 ‘세계 5위’라는 숫자에 얽매여 전시작전통제권 조기환수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비대칭 무기인 핵무기는 재래식 전력의 양적·질적 우위를 일거에 무력화하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다.

안보에는 선의도, 실험도 없다. ‘핵(核)면죄부’만 주는 대북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미동맹과 자주국방은 반대 개념이 아니다. 미국의 확장 억지력과 한·미 연합전력이 대북 억지의 근간인 만큼 동맹의 균열을 메우고, 억지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