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쌀쌀해질수록 가을야구는 점점 더 절정으로 향한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는 벌써 마지막 챕터인 월드시리즈(WS·7전4승제)가 한창이고 한국 KBO리그는 이제야 플레이오프(PO·5전3승제)가 시작됐다. 단기전이니만큼 총력전을 펼치는 포스트시즌은 모든 승부가 치열한 만큼 많은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올해 가을야구에서 유독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마무리 투수의 출근 시간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9회 시작과 함께 등장해 아웃카운트 3개를 잡던 마무리 투수의 공식이 가을야구에서는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한국과 미국의 포스트시즌에서 ‘멀티이닝 마무리’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승부가 기울 수 있는 순간이라면 8회에도, 7회에도 가장 믿을 만한 투수를 올린다. 지켜야 할 것은 보직이나 개인 기록이 아니라 눈앞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월드시리즈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에 2승 무패로 앞선 밀워키 브루어스가 대표적이다. 정규시즌 마무리 트레버 메길이 있지만, 가을의 뒷문은 그의 전유물이 아니다. 왼손 에런 애슈비가 승부처부터 경기 종료까지 책임지는 소방수로 활약하고 있다. 애슈비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에서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하는 세이브를 따냈다.
월드시리즈에서도 1차전 마지막 이닝은 메길이 책임졌지만, 2차전에서는 애슈비가 아웃카운트 5개를 처리하며 승리를 지켰다. 이렇게 가을 들어 팻 머피 밀워키 감독의 가장 큰 신뢰를 얻은 애슈비는 올해 포스트시즌 역사상 최초로 6경기 연속 등판에서 매 경기 최소 5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면서 단 한 점도 허용하지 않은 투수가 됐다.
KBO리그 KIA 전상현도 같은 방식으로 팀의 진격을 뒷받침했다. LG와 준플레이오프 1·2차전에서 나란히 1.1이닝 세이브를 올렸다. 특히 2차전에서는 6-3으로 앞선 8회 2사 1, 2루의 위기에 등판해 이를 끊은 뒤 마지막 이닝까지 책임졌다. KIA는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사실 마무리 투수가 1이닝을 던진다는 공식이 만들어진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먼저 세이브라는 개념이 등장부터 살펴봐야 한다. 구원투수의 공헌을 제대로 평가하려는 고민에서 미국 야구기자 제롬 홀츠먼이 1959년 고안했고, 메이저리그는 1969년 이를 공식 기록으로 채택했다. 초창기 구원 에이스에게 중요한 것은 등판 이닝보다 위기의 크기였다. 선발투수가 흔들리면 마운드를 넘겨받아 남은 여러 이닝을 막았다. 불이 난 곳이면 언제든 달려가는 ‘소방수’였다.
오늘날 익숙한 9회 전담 마무리의 등장은 1988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시작이었다. 당시 토니 라루사 감독은 데니스 에커슬리를 짧은 이닝에 집중시키며 현대적인 마무리 운용을 정착시켰다. 에커슬리는 1988년 45세이브를 거뒀다. 이후 ‘마무리=9회 1이닝’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긴 정규시즌에서는 합리적인 방식이다. 등판 시점을 예측할 수 있고, 투구 부담을 나눠 여러 날의 승리를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경기의 무게가 훨씬 큰 단기전은 계산법이 다르다. 8회 중심타선과의 승부에서 역전을 허용하면 9회 마무리 등판 계획은 소용없어진다. 가장 어려운 아웃카운트가 반드시 마지막 세 개인 것도 아니다.
가을야구에서는 굳어진 투수 보직의 칸막이가 사라진다. 한 이닝을 마쳤다는 이유로 구위가 좋은 투수를 내리고, 마무리라는 이유로 가장 위험한 순간까지 벤치에 남겨둘 필요는 없다.
삼성의 PO 불펜 운용도 이런 관점에서 주목된다. 정규시즌 35세이브로 이 부문 1위에 오른 김재윤이 오른쪽 전거근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졌다. 확실한 마무리의 공백은 크지만, 해법이 반드시 다른 한 명에게 9회를 통째로 맡기는 방식일 필요는 없다.
상대 중심타선이 걸리는 이닝에 가장 믿을 만한 투수를 먼저 투입하고, 투구 수와 구위를 보며 다음 이닝까지 맡기는 선택도 가능하다. 여러 투수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나눠 책임질 수도 있다. 다만 멀티이닝은 무조건 오래 던지게 하는 전략이 아니다. 연투 여부와 회복 상태를 함께 살펴야 효과를 낸다.
가을의 마무리는 등판하는 시간이 아니라 승부를 끝내는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9회라는 시간표와 1이닝이라는 경계보다 중요한 것은 가장 위험한 순간에 누구에게 공을 맡기느냐다. 우승으로 가는 길에서 필요한 것은 정해진 마무리가 아니라, 승리를 끝까지 지킬 투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