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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선스 사오던 한국, 이젠 브로드웨이 신작 만든다 [S스토리-수출 넘어 제작 주도… 판 키우는 K뮤지컬]

에이콤·신시 등 1세대 제작사 선봉
해외 창작진과 협업해 영미권 공략
리드 프로듀서로 개발비까지 투자해
‘개츠비’ 등 누적 매출 1억 달러 돌파

한국이 부활시킨 ‘네로’ 런던서 공연
‘라이온 킹’ 연출가 공동제작 제안도
현지서 쌓은 신뢰, 후속작 발판으로
경험·수익, 국내 창작으로 이어져야

빅토리아 시대에 뿌리를 둔 영국 런던의 유서 깊은 극장 채링크로스 시어터. 이곳에서는 요즘 배우 14명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연기하는 ‘K뮤지컬’이 공연된다. 우리나라 1세대 뮤지컬 제작사 에이콤이 제작한 ‘프란츠 앤 마리’다. 다음 달 2일부터는 국내 뮤지컬 명가 신시컴퍼니가 런던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 엘리펀트에서 신작 ‘네로’를 선보인다.

국내 뮤지컬 시장을 일군 제작사와 프로듀서가 해외 창작진과 개발한 작품을 영미권 극장가에 잇따라 올리고 있다. 국내 작품을 현지 언어와 배우로 공연하는 방식과 함께 한국 제작사가 해외 창작진을 모으고 개발비를 투자해 현지 제작을 이끄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작품의 해외 진출에 프로듀서의 해외 진출이 더해지는 양상이다. 새로운 작품과 장기간 개발을 뒷받침할 투자·제작 역량을 찾는 영미권 공연계 수요와 맞물린 움직임이다.

K뮤지컬 제작사들이 국내 작품의 해외 공연과 영미권 현지 신작 개발을 병행하며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공연 중인 ‘프란츠 앤 마리’와 중국 무대에 오른 ‘쉐도우’·‘홍련’의 공연 장면, 런던 트라이아웃을 앞둔 ‘네로’ 포스터를 태극 문양과 무대 커튼에 결합해 세계로 향하는 K뮤지컬을 표현한 이미지. 각 제작사 제공
K뮤지컬 제작사들이 국내 작품의 해외 공연과 영미권 현지 신작 개발을 병행하며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공연 중인 ‘프란츠 앤 마리’와 중국 무대에 오른 ‘쉐도우’·‘홍련’의 공연 장면, 런던 트라이아웃을 앞둔 ‘네로’ 포스터를 태극 문양과 무대 커튼에 결합해 세계로 향하는 K뮤지컬을 표현한 이미지. 각 제작사 제공

세계 뮤지컬 중심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위대한 개츠비’와 ‘어쩌면 해피엔딩’은 K뮤지컬의 서로 다른 해외 진출 경로를 대표한다. ‘위대한 개츠비’는 한국 프로듀서가 해외 창작진과 개발한 작품이다. 토니상을 석권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국내에서 개발한 작품이 현지 제작을 거쳐 시장을 넓힌 사례다. 브로드웨이월드 집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누적 입장권 매출은 ‘위대한 개츠비’ 약 1억4499만달러(약 1918억7000만원), ‘어쩌면 해피엔딩’ 약 1억669만달러(약 1411억4000만원)다. 두 작품 모두 1억달러를 넘어섰다.

◆한국 제작사가 이끄는 영미권 신작 개발

에이콤의 ‘프란츠 앤 마리’는 국내에서 공연한 작품을 영국 시장에 맞게 재구성했다. 독일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희곡을 바탕으로 2014년 국내 초연한 뮤지컬 ‘보이첵’이 출발점이다.

‘네로’는 한국 제작사의 참여로 중단됐던 해외 프로젝트가 다시 개발되기 시작한 사례다. 토니상 수상작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극작가 스티븐 세이터가 2006년 구상해 2015년까지 두 차례 워크숍을 진행하다 개발이 멈췄다. 박명성 프로듀서가 이끄는 신시컴퍼니가 2022년 메인 프로듀서로 합류해 제작비를 부담하면서 재개발이 시작됐다. 이번 런던 공연은 관객 반응을 살피며 작품을 다듬는 트라이아웃 무대다.

작품은 폭군이 되기 전 예술가를 꿈꿨던 젊은 네로에서 출발한다. 권력을 물려받은 인물이 가족과 사랑, 정치적 야망 사이에서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권력과 욕망, 독재자와 대중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극작·작사는 세이터가 맡고 음악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호흡을 맞춘 던컨 시크가 쓴다. 궁극적으로 대극장을 목표로 하지만 이번에는 310석 극장에서 작품의 가능성을 시험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제작한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는 세계 무대를 겨냥한 신작을 여럿 개발 중이다. ‘어거스트 러쉬’는 내년 3월 27일부터 5월 2일까지 미국 샌디에이고 올드 글로브에서 브로드웨이 진출을 목표로 한 프리브로드웨이 공연을 한다. 음악 신동이 뉴욕에서 부모를 찾아가는 동명 영화가 원작이다.

브로드웨이에서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알리면서 현지 창작진이 먼저 제작을 제안하기도 한다. ‘라이온 킹’ 연출가 줄리 테이머와 영화 ‘프리다’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작곡가 엘리엇 골덴탈이 신작 ‘위대한 망상’을 함께 만들자고 신 대표에게 제안했을 정도다. 현대 뉴욕과 인도, 신화적 세계를 오가는 판타지로 인형극과 움직임, 음악을 결합하는데 벌써부터 미국 현지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내년 5월 11일부터 6월 6일까지 뉴욕 브루클린음악아카데미(BAM) 하비 시어터에서 세계 초연한다.

◆아시아에서는 재연·순회공연으로 확장

아시아에서는 한국 작품을 현지 언어와 배우로 제작하는 라이선스 공연이 재연과 순회공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블루스테이지의 ‘쉐도우’는 중국 펀타운 프로덕션과 함께 지난 8월 22일부터 9월 12일까지 상하이 중국대희원에서 공연했다. 사도세자와 영조의 비극을 타임루프 판타지와 록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지난해 9월 국내 초연한 뒤 약 1년 만에 첫 해외 라이선스 공연이 이뤄졌다. 제작사는 내년 1월 상하이 재연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중국 공연에는 김현준 연출과 허재인 작가가 직접 참여했다. 한국 역사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현지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도록 작품을 조율했다. 부모와 자식 사이 사랑과 상처라는 보편적 관계가 작품 중심에 놓여 있다. 원작 창작진이 현지 제작에도 참여해 무엇을 유지하고 어떻게 전달할지 함께 결정한 사례다.

장화홍련과 바리데기 설화를 엮은 ‘홍련’은 중국에서 공연 지역을 넓혔다. 제작사 마틴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올해 5월부터 10월까지 베이징과 광저우, 청두, 항저우 등 23개 지역에서 35회 공연했다. 지난 16일부터는 상하이공무대에서 공연을 시작해 다음 달 1일까지 이어간다. 국립정동극장이 개발한 작품들은 일본 무대에 올랐다. ‘비밀의 화원’은 지난 17일 도쿄 요미우리 오테마치홀에서 개막해 다음 달 1일까지 공연한다. 또 ‘쇼맨-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는 지난달 도쿄 신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선보였다. 국내 공공극장에서 개발한 작품이 해외 현지 제작으로 이어진 사례다.

한국 뮤지컬의 해외 진출은 작품 수출과 현지 공동개발, 라이선스 재연과 순회공연으로 넓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 프로듀서가 현지에서 쌓은 신뢰와 제작 경험은 후속 프로젝트를 여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이를 국내 창작 생태계의 성장으로 연결하려면 창작진과 기술 스태프가 함께 진출할 기회를 넓히고 해외 공연에서 얻은 경험과 수익이 새 작품 개발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최승연 뮤지컬평론가는 “한국에서 프로듀싱 능력을 극대화한 1세대 제작자들이 해외에서 그 능력을 실험하는 무대를 가져가려 한다”며 “현지에서 직접 프로듀싱을 한다는 점에서 한국 뮤지컬의 또다른 진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제작사 대표들이 리드 프로듀서로서 좋은 결과물을 내면 그 명성과 성과가 상징 자본으로 쌓여 후속 해외 진출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