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대법관 재제청 문제로 청와대와 갈등을 빚어온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조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거부와 업무추진비 부당 집행 의혹 등을 국정조사로 규명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 현직 대법원장에 대한 국정조사가 실시된다면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야당은 이번 국정조사가 “탄핵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반발하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등 맞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 전은수 원내대변인은 27일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조 대법원장에 대한 향후 조치와 관련해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데 모두 의견이 모아졌다”며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다음달 5일 열리는 본회의에 국정조사 요구서를 보고한 뒤, 1∼2주 내로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까지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야당인 국민의힘이 국정조사 계획서에 대한 필리버스터 등을 검토하고 있어 구체적인 일정은 불투명한 상태다.
한병도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대법관 재제청 거부 공백 장기화부터 현금 격려금 업무추진비 집행까지 조 대법원장 본인을 둘러싼 의혹도 겹겹이 쌓이고 있다”며 “제기된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고 국민적 의구심을 해소하는 것은 국회가 마땅히 할 책무”라고 주장했다.
여당은 조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거부, 국정감사에서의 증인 선서 거부, 업무추진비 남용 의혹 등을 전부 살펴보겠다는 목표다. 한 원내대표는 이후 기자들에게 국정조사 세부 계획은 의총에서 권한을 위임받은 지도부가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의총에서 조 대법원장 탄핵안 관련 논의는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그간 조 대법원장의 정치 개입 논란 등을 들어 탄핵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경우 정치적 역풍과 중도층 여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국정조사를 우선 추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탄핵안 추진 가능성도 열어뒀다. 전 원내대변인은 “나중에 (탄핵) 인용(가능성)까지 전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정조사를 통해 밝힐 것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조국혁신당도 즉각적인 탄핵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신장식 대표는 KBS 라디오에서 “조 대법원장 탄핵은 다음 주 대통령 시정연설 전에 처리해야 한다”며 “역풍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국정조사 추진을 두고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탄핵 사유”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탄핵보다 비열하고 악질적”이라며 “노골적인 사법부 탄압이고 명백한 삼권분립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조 대법원장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나, 헌법상 근거가 없는 권한을 행사했나”라며 “이 대통령과 민주당 김민석 대표의 정치적 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대법원장 한 사람을 악마화하고 괴롭히는 폭력적인 이지메 정치”라고 성토했다.
야당은 “강력한 범국민적 저항”을 예고했다. 정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악질적 거대 여당의 국정조사 폭거에 맞서 싸우겠다”며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조사 계획서가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야당은 필리버스터로 맞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정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 여부에 대해 “의총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로, 의총에서 (필리버스터) 제안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외집회와 국회 일정 전면 보이콧 등도 대응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오 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항소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기존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해병)과 2차 종합특검을 겨냥한 ‘3+1 조작특검’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역공에 나선 가운데, 여당의 대법원장 국정조사 추진까지 겹치며 야당의 총력 투쟁이 예고되고 있다.
장동혁 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국여성지방의원협의회 총회에서 “국정조사는 탄핵으로 가기 위한 전 단계”라며 “올 연말까지 어떻게든 (조 대법원장을) 탄핵하려고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우리의 저항은 이제 의무가 됐다. 선택 사항이 아니다”라며 “대한민국이 이재명 정권의 독재국가로 바뀌는 걸 허용하지 않으려면 함께 싸우고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국정조사가 사법부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국정감사에서 오 시장의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 항소심 무죄 판결에 조 대법원장이 관여했다는 식의 비판이 나왔다며 “국조법상 감사나 조사는 계속 중인 재판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돼선 안 되는데, 특정 정치적 사건의 판결 결과를 이유로 사법부 수장을 조사하겠다는 건 사법 독립을 흔드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재경 지방법원 판사도 “일선 법관들이 법과 양심이 아닌 정치권의 눈치를 보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퇴근길에서 여당의 국정조사 추진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편 이 대통령은 28일 민주당 5·6선 중진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한다. 송영길·김태년·박지원·안규백·우원식·윤호중·이인영·정동영·정성호 의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26일 우 의원과 오찬을 함께하며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