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남정훈 기자] 래퍼 원썬이 말했던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다고.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인 삼성의 최형우가 위기에 몰린 팀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로 구해냈다. 모두가 걱정하던 수비에서는 레이저 송구로 타자주자를 잡아냈고, 주전공인 타석에서는 팀의 침묵을 깨는 첫 안타와 쐐기 솔로포를 쏘아올렸다. 플레이오프 2차전은 그야말로 ‘최형우 시리즈’에서는 최형우가 선발로 뛰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증명한 한 판이었다.
최형우는 27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KIA와의 2026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5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장해 3타수 2안타(1홈런) 2타점 1볼넷으로 맹활약하며 삼성의 8-3 승리를 이끌었다. 전날 안타 2개의 빈공에 허덕이며 완패를 당했던 삼성은 이날 승리로 시리즈 전적을 1승1패로 균형을 맞추며 적지인 광주로 넘어갈 수 있게 됐다.
삼성과 KIA의 이번 플레이오프는 ‘최형우 시리즈’가 불린다. 2011~2014년 삼성의 통합우승 4연패의 주역이자 ‘삼성 왕조’의 4번 타자로 활약한 최형우는 2017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어 KIA로 이적했다. 호랑이 군단에서 통합우승 2차례를 이끈 최형우는 올 시즌을 앞두고 얻은 FA 자격을 친정팀 컴백에 썼다.
‘최형우 시리즈’지만, 최형우는 1차전 선발 라인업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정규시즌 막판 햄스트링 힘줄 부상을 당한 타격왕(0.371) ‘캡틴’ 구자욱이 빠른 회복세로 엔트리에는 합류했지만, 수비가 불가능한 상황. 결국 올 시즌 내내 지명타자로 나섰던 최형우가 1차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수비 하나가 승패를 가르는 단기전 특성상 수비를 중시한 라인업을 위해 타격 능력은 여전히 최상급인 최형우를 빼는 선택을 했던 박진만 감독은 2차전을 앞두고 최형우를 전격적으로 선발 좌익수로 선발 출장시켰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어제 타선이 워낙 무기력했다. 경험 많고,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최형우를 라인업에 넣었다”라고 설명했다. 최형우 본인조차 “내가 수비하는 상황을 최대한 줄이는 게 맞다”라고 했지만, 박 감독은 “말은 그렇게 해도 수비 연습을 잘 했다. 최형우의 수비에 대해 얘기가 많지만 한 번 지켜보시죠”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 감독의 공언대로 최형우의 존재감은 공수에서 빛났다. 2회 1사에 들어선 첫 타석에서 깨끗한 우전 안타로 팀의 첫 안타를 신고했다. 최고참의 안타에 혈이 뚫린 삼성 타선은 3회 폭발했다. 2사 2루에서 박승규의 적시 2루타로 1-1 동점을 만들었고, 구자욱의 적시타와 디아즈의 투런포까지 터져나오며 4-1 역전에 성공했다.
최형우는 후배들의 맹활약에 무임승차하지 않았다. 6회엔 좌측 담장을 직격하는 타구에 2루까지 뛰던 카스트로를 정확한 2루 송구로 잡아내며 ‘수비 요정’의 면모를 뽐냈다. 7회 1사에서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선 최형우는 KIA 좌완 불펜 김범수의 가운데 높은 코스에 몰린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우측 담장을 훌쩍 넘겼다. 그 순간 3루측 삼성 응원석에서는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삼성이 승리가 확실시될 때 나오는 상징적인 응원가인 윤수일의 ‘아파트’였다. 42세 10개월 11일로 포스트시즌 최고령 홈런 기록을 경신하는 등 3타수 2안타(1홈런) 2타점 1볼넷으로 맹활약한 최형우는 이날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경기 뒤 원태인과 함께 수훈 선수 인터뷰에 임한 최형우에게 물었다. “홈런과 호수비 중에 무엇이 더 기쁜가요?”
최형우는 숨도 쉬지 않고 답했다. “호수비가 100배는 더 기쁩니다”
수비 상황에 대해 묻자 최형우는 “뭐, 그냥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제가 봐도 말도 안 되게 송구가 2루 베이스쪽으로 잘 갔다”며 웃었다.
수비에 대한 부담이 오늘 경기로 좀 사그러들었느냐 묻자 최형우는 “지금도 있다. 계속 있다. 어쩔 수 없다. 단기전이라 수비 실책 하나로 승패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라면서 “나이가 드니까 자신감이 떨어지고 판단도 늦다. 공도 흔들려서 오고...암튼 힘듭니다”라고 답했다.
박진만 감독은 29일 광주에서 열리는 3차전에서도 최형우를 선발 좌익수로 쓰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최형우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전화 한번 드려야겠다. 감독님이 야구장이 커지는 것을 모르시는 것 같다”라고 응수했다.
6회 보살 호수비 후 더그아웃에 들어올 때 후배인 류지혁이 최형우의 호수비를 놀라워하며 공을 기념구처럼 최형우에게 건넸다. 이에 대해 최형우는 “원래 (류)지혁이를 세게 때리려다가 카메라가 하도 많이 찍고 있길래 참았다. 욕도 하고 싶었는데...”라고 당시 상황을 얘기했다.
팬들의 응원도 최형우의 수비에 큰 힘이 됐다. 그는 “1회에 이지 플라이를 잡았을 때도 크게 환호해주시고, 파울 플라이를 잡으러 뛰어가도 박수쳐주시더라. 노인우대를 해주시는 것 같아 너무 감사했다”라며 웃었다.
이날 42세 10개월 11일을 맞이한 최형우는 포스트시즌 최고령 출장을 비롯해 안타, 타점, 홈런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이에 대해 묻자 단호했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