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총회 회의장에서 미국의 대(對)쿠바 경제 제재를 논의하던 중 미국과 쿠바 정부 대표가 막말을 주고받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유엔 관계자들은 “그간 유엔 외교의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난,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충격적”이란 반응을 보였다.
27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이날 유엔 총회는 섬나라 쿠바를 겨냥해 수십년간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경제 봉쇄를 규탄하는 결의안 채택 여부를 안건으로 올렸다. 동서 냉전이 끝난 1990년대 초 시작돼 34년 동안 매년 되풀이해 온 유엔의 연례 행사다. 해마다 회원국들의 압도적 지지로 규탄 결의안이 총회를 통과하지만, 미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쿠바 경제의 숨통을 조이는 중이다.
올해도 마이크 왈츠 주(駐)유엔 미국 대사가 연단에 올라 규탄 결의안 채택에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왈츠 대사는 쿠바 사회주의 정권을 상대로 오랫동안 제기된 각종 부패 의혹을 나열했다. 그러자 브루노 로드리게스 외교부 장관을 필두로 한 쿠바 정부 대표단이 손으로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그만할 것을 요청했다.
총회장 안에 있던 유엔 관계자들이 나서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하는 순간 로드리게스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장석 및 발언대가 있는 단상 쪽으로 걸어갔다. 왈츠 대사 앞으로 다가간 로드리게스 장관은 “당신은 거짓말쟁이야(You are a liar)!”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에 왈츠 대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신은 지금 당신이 누구를 상대하는지 알고나 있어? 여긴 미국이야(This is America)”라는 말로 맞받았다. 이어 로드리게스 장관을 향해 “제자리로 돌아가(Back up)”라고 외쳤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초 베네수엘라에 군대를 보내 니콜라스 마두로 당시 대통령을 마약 밀매 등 혐의로 체포했다. 미군 특수부대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대통령 관저에 들어가 마두로 부부의 신병을 확보한 뒤 뉴욕으로 압송했다. 베네수엘라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트럼프는 다음에 혼내줄 이른바 ‘불량 국가’로 쿠바를 지목했다. 쿠바는 2019년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 취임 후 예전보다 개혁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여전히 사회주의를 신봉하며 반미 노선을 고수하는 중이다.
지난 1월 하순 트럼프는 “쿠바에 석유를 판매하거나 제공하는 모든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로 인해 섬에서 쓰던 전력이 사실상 소진되며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주민들이 요리, 식수 공급, 인터넷 및 전화 서비스 사용 등 가장 기초적인 일상 생활을 누리는 것조차 힘들어지며 쿠바 정권도 차츰 한계점에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최근 트럼프는 이란을 겨냥한 군사 공격 재개 가능성을 거론하며 “이란에서 돌아오는 길에 쿠바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무를 마치고 이란에서 돌아오는 함정들 중 한 척을 쿠바 해변에서 약 50야드(45.7m) 떨어진 곳에 정박시키겠다”고 덧붙였다. 무력으로 쿠바 정권 전복을 시도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