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뛰는 팀에 들어갔다. 데뷔전 코트도 함께 밟았다. 계약은 아버지의 에이전트가 맡았다. 드래프트 순번은 58명 중 55번째. 사람들은 이걸 ‘아빠찬스’라고 불렀다.
이름부터 아버지 것이었다. 본명은 르브론 제임스 주니어. 미국프로농구(NBA) 역대 최고로 꼽히는 르브론 제임스의 아들, LA 레이커스의 브로니 제임스(22)다.
사진도 사인도 싫었다
농구는 일찍 시작했다. 4세 때 오하이오주 고향 동네 체육관에서 처음 공을 잡았다. 부모는 운동을 마음껏 시켰다. 다만 미식축구와 아이스하키는 금지였다. 아버지 르브론은 고교 시절 미식축구로도 이름을 날렸지만 “아이들 안전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10세 무렵 브로니는 농구 하나에 매달렸다.
실력이 늘수록 아버지의 이름도 따라붙었다. 초등학생 때 경기 영상이 수백만 조회수를 찍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자’, ‘사인을 해 달라’며 몰려들었다.
르브론은 “아들은 사람들이 자기가 누군지 모르길 바란다. 사진이나 사인 요청을 질색하고 내 등번호도 달지 않는다”고 했다.
환호도 야유도 아버지 때문이었다
2018년 여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체육관. 14세 브로니가 뛰는 유소년 대회에 관중이 빽빽이 들어찼다. 자리가 없어 경비원들이 체육관 문을 닫아걸었다. 먼 길을 차로 달려온 팬들도 문밖에서 발길을 돌렸다. 고교에 진학한 뒤엔 홈 개막전 표가 32초 만에 동났다.
원정 경기에선 분위기가 정반대였다. 상대 관중은 야유를 퍼부었다. 코트로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기자들의 취재 요청도 빗발쳤다. 르브론은 아들이 기자와 인터뷰하는 걸 막았다. 고교 시절 내내 브로니는 한 번도 기자 앞에 서지 않았다.
심장이 멈춘 뒤
2023년 7월 24일 아침,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체육관. 입학을 앞둔 브로니가 훈련 도중 코트에 쓰러졌다. 심장이 멎어 있었다. 코치 한 명이 가장 먼저 뛰쳐나가 자동심장충격기(AED)를 들고 왔다. 심폐소생술과 전기충격 끝에 심장이 다시 뛰었다. 브로니는 의식을 되찾은 뒤 병원으로 옮겨졌다.
정밀 검사 결과 선천성 심장 질환이 발견됐다. 농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브로니는 수술을 받고 재활에 매달렸다. 쓰러진 지 4개월여 만에 대학 데뷔전 코트에 섰다. 관중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돌아온 코트는 냉정했다. 대학 한 시즌 내내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다. NBA에 가기엔 이르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도 브로니는 이듬해 NBA 드래프트에 나섰다. 지명 직전, 아버지의 에이전트가 다른 구단들에 브로니를 뽑으면 호주 리그로 보내겠다고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브로니의 이름을 부른 건 결국 레이커스였다.
계약 조건은 4년 790만달러(약 110억원). 전체 55순위 신인으로는 드문 계약이었다. ‘아빠찬스’ 논란은 더 거세졌다.
JJ 레딕 레이커스 감독은 “우리는 브로니에게 아무것도 거저 주지 않았다. 스스로 노력해 얻어낸 것”이라고 했다.
비난이 쏟아져도 르브론은 아들이 이 길을 택한 것 자체를 높이 샀다.
“아빠가 엄청 유명하고 부자인데도 스스로 뭔가 이루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나라면 그랬을지 모르겠다.”
르브론이 아니라 브로니로
2024년 10월 NBA 데뷔전, 브로니가 르브론과 나란히 코트에 들어섰다. 같은 유니폼을 입은 아버지와 아들이 NBA 경기를 함께 뛴 건 리그 역사상 처음이었다.
화려한 데뷔는 그날 하루였다. 브로니는 곧 NBA 하부리그(G리그)로 내려갔다. 첫 시즌 대부분을 관중이 드문 체육관에서 보냈다.
올여름, 르브론이 필라델피아 76ers로 떠났다. 미디어데이에서 아버지 없는 시즌을 묻자 브로니는 이름 이야기부터 꺼냈다.
“다들 저를 브로니로 알죠. 본명은 르브론이에요. 르브론이 아니라 브로니로 증명하는 것, 그게 매일 저를 일으켜요.”
이제 ‘아빠찬스’는 없다. 오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레이커스는 홈에서 76ers를 맞는다. 이번엔 아버지가 상대편이다.
이름부터 아버지 것이었던 아들은 ‘브로니’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길이 있고, 저는 제 길이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