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갔다. 그분은 원래 어렸을 때부터 폐렴을 자주 앓았고 평생 폐 건강을 걱정하며 살아온 분이다. 분위기가 안 좋으면 어쩌나 걱정을 하면서 갔는데 병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병원 앞에서 산 주스 상자를 놓을 곳이 없을 정도로 침대 주변에 책이 많았다. 비좁은 6인실 한 자리에 자연스럽게 병실 도서관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분께 들은 병원 독서 이력은 꽤나 흥미로웠다. 외국 유학 시절에도 전염을 염려해야 하는 폐병에 걸려 폐쇄 병동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할 일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그분이 선택한 것은 니체 전집을 읽는 것이었다고. 한국어로 번역된 니체 전집을 유학 갈 때 가져갔는데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하다가 병원에 틀어박혀 있으니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니체를 읽지 않았으면 평생 니체를 읽지 못했을 거라면서. 오히려 축복 같은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내가 간 후 얼마 있다가 그분의 부인이 병원에 도착했는데, “아파 죽어도 책만 볼 사람”이라며 웃었다. 그분은 퇴원하면 책을 읽지 못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병원에 있을 때 더 많이 읽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은 무슨 책에 빠져 있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질문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나와 정원의 벤치에 앉아 그동안 구입해 두었던 전자책 목록을 열어보았다. 누구나 언젠가는 꼭 읽어야 한다고 다짐하며 구입해 놓은 책이 있기 마련일 듯하다. 여행할 때 읽어야지, 휴가 때 읽어야지, 올 한 해 안에 읽어야지 하면서 구입해 놓은 책들 말이다.
나도 몇 년 전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강독을 구입해 놓고 아직 읽지 못했다. 초반에 읽다가 너무 어려워 번역자가 별도 펴낸 강의 해설서를 읽기는 했지만 이 책을 읽지 못했다는 것은 늘 마음에 짐이 된다.
책이 아니면 세상을 항해할 지표를 얻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사실 더 쉽게 책을 만난다. 좀 더 생활 가까이에 밀착해 들어온 문학 텍스트들, 드립 커피 포장지나 온갖 굿즈에서 발견되는 경구들은 때로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그럼에도 나는 독서는 일종의 싸움의 한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내고, 에너지를 들여 저자의 견해에, 그 넓은 숲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 독서다.
병원 앞 정원을 한 바퀴 돌며 산책했다. 벌써 색깔이 노랗게 변한 키 큰 나무가 방주처럼 우람했다. 병원에 오면 자꾸 나무를 올려다보게 된다.
강영숙 소설가

